내가 떡지순례길에 오른 이유

과장을 조금 보태 내게 떡볶이란 인생 그 자체다. 마을버스 요금 100원을 아껴 학교 후문에 위치한 분식집에서 컵 떡볶이를 사 먹을 만큼 떡볶이에 진심이었다. 그 시절 분식집은 아이들에게 만남의 장소이자 하굣길의 행복이었다.

 

얼마 전까지 나의 떡볶이 세계는 퍽 좁았다. 몇 년간 거의 ‘죠스 떡볶이’만 고집했을 정도였으니까. 우연히 포털사이트에 ‘떡볶이 맛집’을 검색한 것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지도에 빼곡히 등장하는 떡볶이집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나,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문득 전국의 떡볶이집이 궁금해졌고,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투어를 다니게 된 것이 떡지순례의 시작이었다.

 

전국 떡볶이 맛집을 기록한 책 『떡지순례』를 준비하며 200여 곳의 떡볶이집을 1년 넘게 찾아다녔다. 떡볶이 순례를 하며 가장 놀란 점은, 분명 어제 그렇게 떡볶이를 먹었는데도 어김없이 오늘 또 떡볶이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떡볶이는 국가가 인정한 최고의 마약이다.

잠실 떡지순례 리스트

떡볶이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순례길에 오른 지 어느덧 4년. 떡볶이를 향한 나의 사랑은 여전히 가래떡처럼 쫀쫀하고 길쭉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인생 떡볶이를 찾기 위해 순례자들과 함께 송파구의 떡볶이 맛집 세 곳을 다녀왔다.

영주의 명물, 서울에 입성하다!

랜떡

맛집을 찾는 최고의 방법은 그 지역 사람에게 묻는 것이다. 1993년 12월, 경상북도 영주시의 문화거리에서 시작한 랜떡은 영주 시민들의 자랑이자 추억의 장소다. 원래 간판도 없는 노점이었지만, 단골들이 랜드로바 매장 앞에 있어 ‘랜떡’으로 부른 게 자연스레 이름이 되었다. 그 명성이 궁금해 몇 년 전 영주에 있는 랜떡에 다녀왔다. 가판대에 놓인 커다란 떡볶이 판에 진한 양념으로 버무려진 두툼한 떡들이 정말 먹음직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2022년 11월, 영주에서만 맛볼 수 있던 랜떡이 잠실에 직영점을 오픈했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갔다. 아늑한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역시 빨간 이불을 덮은 떡볶이 판이다. 랜떡답게 떡볶이 판의 크기부터 떡볶이 비주얼까지 예사롭지 않았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하면 되는데, 떡과 어묵의 비율을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떡 3개, 어묵 2개를 주문했다.

 

매일 방앗간에서 뽑은 신선한 가래떡을 사용해 쫀득하고 담백한 맛이 났다. 걸쭉한 농도의 고추장 양념은 단맛이 과하지 않고 굵은 떡과 잘 어울렸다. 아삭한 양배추도 듬뿍 올라가 식감까지 삼박자가 잘 맞았다. 무엇보다 영주에서 먹었던 맛과 똑같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매장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송파구 주민으로 보였다. 송파구에 사는 떡지순례 회원들의 제보로는 배달 주문도 가능하다고 하니, 재야의 고수가 잠실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벌써 퍼진 모양이다.

INFO

랜떡 송파직영점

운영

매일 11:00~21:00

메뉴

떡볶이(5개) 3,500원, 물오뎅(5개) 3,500원

문의

02-3432-1118

떡볶이로 해장하기 위해 전날 술을 마시고 오는 곳

골목떡볶이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서울 3대 떡볶이로 꼽히는 골목떡볶이다. 골목떡볶이는 2022년 1월 1일 방문 후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들렀다. 당시에 ‘앞으로는 새해에 떡국 대신 골목떡볶이’라는 한 줄 평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골목떡볶이가 위치한 골목에 들어서면 파란색 간판이 시선을 강탈한다. 사장님께 여쭤보니 처음에는 노점으로 시작하셨단다. 매장 내부도 파란 의자가 놓인 포차 스타일이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곳답게 떡볶이 판은 무려 세 개다. 이곳에선 주문하는 룰이 따로 있다. 먼저 비치된 쟁반과 포크, 수저를 챙긴 후 떡볶이 판 앞에서 사장님께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된다. 메뉴는 떡볶이, 순대, 만두로 심플한 편. 단골들은 셀프 시스템에 맞춰 알아서 척척 주문한다.

떡볶이는 국물이 많고 걸쭉한 스타일이라 마치 떡국을 먹는 기분이다. 달짝지근하면서 살짝 매콤해 누구나 먹기 편하다. 연하고 맑은 국물이지만 은근히 칼칼한 맛도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골목떡볶이로 해장하기 위해 일부러 술을 마신다는 이도 있을 정도다. 비법은 무말랭이와 북어를 넣고 끓인 육수에 있다. 떡은 호로록 먹기 좋은 밀떡으로 쫄깃한 식감까지 완벽하다. 개인적으로 골목떡볶이의 순대와 만두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꼭 함께 먹기를 추천한다. 한눈에도 신선해 보이는 순대는 지금껏 떡볶이집에서 먹은 수많은 순대 가운데 만족도 상위권에 속한다. 만두를 바삭하게 즐기고 싶다면 찍먹을 추천하지만, 촉촉하게 즐기는 담먹도 좋다. 어떻게 먹어도 후회하지 않을 맛이다.

INFO

골목떡볶이

운영

월-금 15:00~21:00, 토-일 13:00~21:00

메뉴

떡볶이 4,000원, 순대 4,000원, 만두(3개) 1,000원

문의

02-3402-3452

폭풍 쇼핑 후엔 즉석 떡볶이

사이드쇼

쇼핑을 한 뒤엔 유난히 떡볶이가 생각난다. 떡볶이의 매콤달콤한 맛이 쇼핑에 지친 몸을 달래주기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롯데월드타워·몰에 위치한 즉석 떡볶이집 사이드쇼다. 새해가 되고 처음으로 떡지순례 회원들과 방문한 떡볶이집이라 더욱 설렜다.

퓨전 떡볶이를 지향하는 곳인 만큼 메뉴가 다양하다. 매운맛, 로제, 곱창, 차돌박이, 통오징어 등 다섯 가지 종류다. 우리는 가장 호불호가 적은 차돌박이 떡볶이로 주문했다. 보통 떡볶이 베이스는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나뉜다. 사이드쇼는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다. 차돌박이 토핑을 고른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차돌박이에서 나온 육즙 덕에 국물이 더 깊고 탄탄한 맛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떡은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밀떡인데, 맛있게 먹고 싶다면 충분히 졸여 양념이 배게 하자. 사이드쇼라는 이름답게 사이드 메뉴 또한 다양하다. 마성의 메뉴 ‘버터 갈릭 감자튀김’도 주문했는데, 바삭한 감자와 고소한 버터 갈릭 소스가 매콤한 떡볶이와 정말 잘 어울렸다. 

즉석떡볶이의 마무리는 역시 볶음밥이다. 떡지순례 회원들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항상 볶음밥은 맛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이드쇼의 볶음밥은 독특하게 떡볶이 국물에 비벼주지 않고 따로 나온다. 마치 그라탱처럼 볶음밥 위에 모차렐라 치즈가 가득 올라가 있고, 떡볶이 국물과 함께 곁들여 먹어도 좋다. 이렇게 요리로 나오니 또 다른 메뉴를 먹는 듯한 색다른 기분이다.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많으니 롯데월드타워·몰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사이드쇼를 들러보길 추천한다.

INFO

사이드쇼 롯데월드몰점

운영

매일 10:30~22:00

메뉴

차돌박이 떡볶이(스몰) 20,500원, 로제 떡볶이 18,000원. 볶음밥 2,500원

문의

02-3213-4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