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직전이었던 2019년, 나는 인도를 여행했다. 그래서 더욱 인도에 대한 회상이 짙은지도 모르겠다. 지프를 타고 해발 5,000m를 넘나들며 북인도 라다크(Ladakh) 지역으로 향하던 길과 티베트인들이 모여 사는 오지에 자리한 스피티 밸리(Spiti Valley)에서의 일주일.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과 꽤나 당연한 모습으로 다가와 무덤덤하게 봐야 하나 싶었던 은하수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인도의 경우, 특정 관광지가 정해져 있기보다 도시나 마을 자체가 여행지인 곳이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도시 안에 머물러 있어도 여행 기분을 온전히 체득하곤 했다. 최대한 많은 것을 해내야 보람찼던 한국과 달리 조금은 느리고 여유롭게,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는 걸 인도에서 깨달았다. 그게 얼마나 큰 위로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특히 수능이 끝나고,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 두 차례 방문했던 인도는 바쁘게 달려온 지난날의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아 언제나 마음이 평온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광장(좌), 성미하일 대성당(우)

여행의 추억을 구성하는 요소 중 5할 이상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풍경을 마주해도 함께한 이들과의 기억이 좋지 않다면 의미 없는 여행지로 남기 마련이고, 평범한 곳이라도 사람에 대한 기억이 좋다면 특별한 여행지로 남는다. 나 또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요즘 들어 유난히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10대 소녀들이 생각난다. 러시아 침공으로 지금은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었지만, 2016년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고, 저렴한 물가 덕분에 ‘동남아 물가로 즐기는 유럽’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는 곳이었다. 사실 여행할 때만 해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저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나라, 구소련 국가, 건물 양식도 유럽보다는 러시아의 연장선에 가까운 나라라고만 생각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Київ) 중앙엔 독립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2014년 친러 정부에 반대하며 일어난 유로마이단(Євромайдан) 혁명의 중심지로 무력 충돌로 인한 희생자들의 추모 열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혁명으로부터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2016년, 친러 성향의 대통령이 탄핵되고 친EU 성향의 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왔다. 내가 방문했던 2016년의 키이우 독립광장은 과거의 아픈 역사가 사라지고 희망이 피어나는 곳이었다. 

 

그런 독립광장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10대 여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내게 다가와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니 신기하다는 감탄과 함께 이번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한번 해보라는 그들의 요청에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와 같은 기초 인사말과 아무 말 몇 마디를 던졌다. 그러자 연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알고 보니 우크라이나에서도 K-POP이 꽤 인기 있는 모양이었다. 그저 여느 나라 10대들과 다름없이 K-POP을 좋아하는 소녀들이 있던 나라. 6년이 지난 지금 그 10대들은 어떤 모습으로 현재를 마주하고 있을까.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멈추고 빠른 시일 내 평화가 깃들길 소망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금 그들을 만나볼 수 있길 기도한다.

몽골의 대초원(상), 쿠바의 수도 아바나 풍경(하)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당장 날아가고 싶은 해외여행지가 너무 많다. 가장 먼저 아프리카로 떠나 1년간 여행하고 싶다. 이렇게 틈만 나면 여행을 꿈꾸는 나에게 주변에선 종종 추천 여행지를 묻곤 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곳은 앞서 언급한 인도와 몽골, 그리고 쿠바다. 몽골의 경우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끝없이 이어진 지평선과 반구 모양으로 뒤덮인 광활한 하늘, 그리고 밤이면 두 눈에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가 평생 잊지 못할 멋진 풍경을 선물한다. 쿠바는 인터넷망 구축이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웬만하면 모든 것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직접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는 의외의 이점이 따르는데, 여행자들끼리 정보 공유를 하면서 유대관계가 끈끈해진다는 것이다. 낯선 이국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을 만나 유대감을 형성하고 싶다면 쿠바를 추천한다. 

 

코로나19로 해외 여행이 막힌 지도 만 2년이 지났다. 삶의 모든 것이 제한되고 ‘잠시 멈춤’이라는 단어와 마주하면서 지난날 당연시 여겼던 일상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국외로 자유로이 나가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은 기억 속 저편으로 흘러간 지 오래다. 그럴 때마다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추억을 상기시킨다. 과거에 내가 어떤 풍경을 마주했고, 또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여행의 추억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게 당연했던 과거의 일상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바라본다.

Photograph  /  이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