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님, GEEP 독자분들에게 그동안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러스트와 미디어 아트를 접목한 영상 작업을 하는 강지영입니다. 판화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주로 인쇄, 평면, 영상, 조형물 등 각 브랜드와 매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일러스트 이미지를 만듭니다. 정교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즐겨 그리다 보니 장식 미술의 하나인 ‘벽지(Mural)’와도 잘 어울려 뮤럴 아티스트로도 활동 중입니다.

작가님의 대표작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국제 고급 시계박람회 ‘SIHH 2018’에서 소개한 <HEREN 매거진>의 부록 작업을 꼽고 싶어요. 각 시계에 어울리는 유명 인사 77명을 그렸어요. 결과물도 좋았고, 작업하는 동안 재미있었습니다. 또 다른 작업은 2019년에 진행한 ‘LX하우시스’의 뮤럴 벽지 페인팅이에요. 트로피컬을 모티브 삼아 수채 물감으로 핸드페인팅 했는데, 생각한 대로 표현이 되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트로피컬 뮤럴벽지 핸드페인팅 (LX 하우시스) ©2019 강지영. ALL RIGHTS RESERVED.
SIHH 2018 시계와 매칭되는 셀러브리티 (HEREN 매거진) ©2018 강지영. ALL RIGHTS RESERVED.

이번 롯데월드타워·몰에서 볼 수 있는 전시는 유리관 속 정원인 ‘테라리움’을 모티브로 하셨어요. 테라리움을 소재로 작업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테라리움은 라틴어 ‘Terra(땅)’와 ‘Arium(용기, 방)’의 합성어로 습도를 지닌 투명한 유리관 혹은 용기 속에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 롯데월드타워·몰 광장에 있는 사각형 미디어 큐브를 봤을 때 하나의 유리관처럼 보였습니다. 미디어 큐브를 보면서 테라리움과 딱 맞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작품은 식물과 곤충을 3D모델링으로 제작한 후 손으로 그린 것 같은 채색법으로 완성했습니다. 공예적인 느낌을 많이 담았죠. 제가 즐겨 그리는 식물과 곤충들이 미디어 큐브에서 움직일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합니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Terrarium ©2023 강지영. ALL RIGHTS RESERVED.
Terrarium ©2023 강지영. ALL RIGHTS RESERVED.

식물은 보고 가꾸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님도 이런 부분에 매력을 느껴 테라리움을 소재로 삼으셨나요?

식물이 주는 안정감도 있지만 형태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기본적으로 테라리움은 물리적으로 작은 공간에 식물을 배치하기 때문에 마치 하나의 미니 정원처럼 보입니다. 제가 그리고 싶은 자연 풍경과도 상당히 맞닿아 있고요. 그게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죠. 무엇보다 저는 자연을 굉장히 좋아해요. 특히 땅에서 바로 자라나는 잡초의 형태미를 사랑합니다. 그 영향으로 잡초를 나무처럼 거대하게 그리는 걸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원 없이 표현했어요.  

식물만큼이나 작품에 등장하는 곤충도 눈에 띕니다. 판타지적인 느낌도 강하고요. 곤충이 등장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곤충의 형태적 아름다움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식물의 경우는 제가 과장하거나 축소하더라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주어지는 마법 같은 존재라면, 자연 속에 있는 곤충은 저에겐 그 자체로 완성형입니다. 제가 다르게 표현했을 때 오히려 실망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식물은 분위기에 맞춰 형태를 바꿔가며 자유롭게 그리지만, 곤충은 있는 그대로 그립니다. 예를 들면 장수하늘소에 나비 날개를 달지 않는 것처럼요. 식물은 변형을 줘도 신비롭지만, 곤충이나 동물은 바꿔 그리면 기괴해지더라고요. 곤충은 제가 그리는 식물들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귀한 손님입니다.

이번 작업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이번 작품으로 정원을 그린다고 하니 멋진 식물들을 잔뜩 그려와서 자기가 그린 걸 꼭 참고하라고 하더군요. 아이의 행동이 귀엽기도 하고 같이 작품을 구상한 듯해서 기분 좋았어요. 이번 작품에 아이가 그려준 식물을 한 컷 넣어 뒀습니다. 

어느 부분인가요? 너무 사랑스러운 관람 포인트네요! 이번 작품을 감상하는 분들에게 또 다른 관람 팁을 주신다면요?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 위치한 초록 잎들입니다. 아이가 큰 잎이 땅에서 자란 것처럼 그렸더라고요.  생김새는 나뭇잎인데 땅에서 자란 풀잎처럼 보이는 모습이 낯설면서 신비로웠습니다. 보통 예쁜 꽃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잎이나 풀이 더 멋져 보여요. 그래서 꽃의 비중은 줄이고 풀잎들이 주인공처럼 보이게 의도했어요. 잎이 모이면 꽃보다 더 화려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풀과 잎을 그릴 때 동세나 뭉침 정도를 심도 있게 표현했으니 그 부분을 집중해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제가 그리는 식물은 대부분 제 기억 속에 있는 이미지의 조합이에요. 자연은 늘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재현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음악에 음표를 배열하듯이 저는 기억을 나열하고 조합해서 그립니다. 제 기억 속을 탐험한다는 생각으로 감상해 주시면 더욱 풍성한 관람이 될 거예요.

작품 활동할 때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계속 자연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웃음) 흙, 뿌리, 잎맥, 줄기, 잎의 모양, 나뭇가지의 흐름 등을 보고 있으면 정말 무궁무진한 영감을 얻습니다. 자연이라는 소재가 주는 형태의 독특함이 영감의 원천이에요. 자연은 많은 작가들이 오랜 시간 사랑해온 소재이지만,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늘 새롭거든요. 변화무쌍하며 신비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매력이 저에게 늘 영감을 줘요. 아름다운 자연을 작품에 표현하고 싶어 똑같이 그리는 노력도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경험한 경이로움이 전혀 담기지 않아 답답했어요. 오히려 정확한 형태를 벗어났을 때 제가 느꼈던 아름다움이 더 잘 표현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추구하는 작품관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무언가가 소모되지 않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풀, 나무껍질 같은 자연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제가 직접 키우진 않았습니다. 거의 철칙이에요. 저는 제 공간에 자연물을 가두고 싶지 않아요. 제가 키우다가 죽거나 망가지는 걸 보고 싶지 않거든요. 저는 그들이 자연의 한 부분으로 고요하게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자연처럼 다치지 않는 것들을 그리는 게 좋습니다. 이런 가치관은 작법에도 영향을 줘요. 예전에는 크고 무거운 실물 작업을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무언가 낭비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물리적으로 남지 않는 컴퓨터 작업이 좋습니다. 다치거나 소멸하지 않으니까요.  컴퓨터로 작업해도 핸드페인팅의 부드러운 깊이 감, 발색 표현이 잘 전달되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진심이 느껴져요.

어릴 적 경험 덕분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됐어요. 저의 할머니가 옛 흙집을 고쳐서 사신 분인데요. 할머니의 정원을 어렸을 때 ‘모정원’이라고 불렀어요. 모정원은 전기도 수도도 없는 자연 그 자체였죠.  촛불을 켜고 아랫목에 앉아 놀고, 아름다운 산길을 걸으며 본 풍경, 손으로 만졌던 나무와 풀 등의 기억이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디서 그런 값진 경험을 할 수 있겠어요.  전 정말 행운아죠. 가끔 그때의 순간이 훅하고 솟아오른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작가님의 향후 목표와 계획도 궁금합니다. 

처음 일러스트 일을 시작할 때 롯데 에비뉴엘 매거진과 꽤 오랜 시간 협업했어요. 7년 만에 다시 연이 닿아 롯데월드타워·몰에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이번 작품은 그 반가움과 자연을 향한 저의 애정을 가감 없이 녹여냈어요. 저의 상상의 정원을 재밌게 즐겨 주세요.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계속 자연을 그릴 생각이에요. 평소에는 의뢰받은 작업을 하다 보니 저의 취향과 생각을 온전히 담기 어렵지만, 틈틈이 개인 작업 시간에 식물을 그리며 연구하고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저를 제일 설레게 하는 작업이거든요. 제가 만든 디지털 정원이 여러 곳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기를 원해요. 더 많이 아름다운 디지털 정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INFO

강지영 <Terrarium>

운영

미디어큐브 10:00~22:00 / 미디어파사드 19:00~22:00

주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및 미디어큐브

문의

02-415-3254

기간

2023년 3월 1일~5월 31일

인스타그램

홈페이지

사진 제공 / 아워레이보, 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