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만물이 태동하는 봄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산뜻하게 단장하고 한 번 더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을 준다. 몇 년간 이어지는 팬데믹 속에서 봄꽃 축제는 자취를 감췄지만, 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피어나며 봄의 시작을 알린다.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 봄과 향긋한 꽃내음 가득한 봄꽃 이야기를 전한다.
- 글
- 김보라

봄은 어찌 보면 조금 이상한 계절이다. 어떤 것을 봐도 큰 감흥이 없고, 일상의 피로에 지친 사람들 마저 가던 길을 멈추고 길가에 핀 꽃을 바라보게 한다. 최근 2년간,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외부 활동이 자제되면서 화훼 소비량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접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는 꽃에 전혀 관심 없었던 지인들도 요즘에는 종종 나에게 연락을 한다.
“봄에 집에만 있으니 기분 전환이 필요해. 봄에 볼 수 있는 예쁜 꽃들 추천해 줄 거 없어?”
봄날을 집에 들이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나 보다. 이들을 위해 일상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 아름다운 봄꽃을 제안해 본다.
갖고 싶은 꽃, 튤립


매일 꽃을 만나고 있기에 대부분의 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튤립은 꼭 갖고 싶은 마성의 매력이 있다. 꽃 시장에서 색색별로 진열되어 있는 튤립을 보고 있으면 마치 쇼퍼홀릭이라도 된 듯 정신을 잃고 몇 단씩 집어 들고 만다.
튤립의 개화시기는 4월에서 5월 사이. 이맘때 전국 곳곳은 튤립축제가 한창이다. 봉우리를 다물고 있을 때 튤립의 심플하고 단아한 자태는 마치 예술 오브제를 보는 것 같다. 독보적인 우아함을 지녀서인지 인테리어에 활용될 때, 다른 꽃과 함께 장식되기보다 단독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편이다. 심지어 한 송이만 있어도 공간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손색이 없다. 게다가 꼭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나에게 주는 선물로 부담 없이 건넬 수 있는 꽃이기도 하다. 장미는 화려하고 로맨틱한 이미지 때문에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 찾는 반면, 튤립은 아무 이유 없이도 친구에게 툭 건네기 좋은 꽃이다. 그러니 이번 봄, 어느 모임에 초대받았다면 튤립 한 다발을 들고 가 보길 권한다. 이제 당신은 센스 있는 안목의 소유자로 주변에 기억될 것이다.
눈꽃 같은 봄날의 꽃, 설유화(가는잎조팝나무)


요즘은 꽃 시장의 소재집(잎 소재 위주로 파는 곳) 근처만 가도 기분이 좋다. 저 멀리서 나뭇가지에 눈송이가 방울방울 달린 설유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아 드디어 봄이 왔구나’ 실감이 절로 나며 설유화를 쓸 생각에 괜스레 신이 난다. 설유화의 정식 명칭은 ‘가는잎조팝나무’이다. 가지에 눈이 소복이 쌓인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가는잎조팝나무의 애칭이다. 3월 말부터 국도변이나 도심 속 길가, 강변 둑 근처를 온통 하얗게 물들이는데, 줄기에 작은 눈꽃 송이가 살짝 앉은 듯 하늘하늘한 느낌이다.
플로리스트 입장에서 설유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작품에 설유화 한줄기가 들어가는 순간 몽환적이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변하는 마법 같은 꽃이기 때문이다. 모든 꽃과 잘 어우러지며 어떤 컬러, 어느 형태의 작품에 넣어도 불협화음 없이 가지 하나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정에서 설유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긴 화병에 가지 몇 개만 무심한 듯 툭 꽂아 놓길 추천한다. 집안이 마치 호텔 로비가 된 것처럼 눈꽃 같이 우아한 설유화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탈바꿈하는 마법을 부려줄 것이다.
길가의 꽃, 제비꽃


집에서 감상하는 꽃과 달리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는 들꽃은 왠지 모두의 봄날을 위로하는 소소한 행복을 건네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들꽃이 얼굴을 드러내는 감격스러운 봄날, 들꽃을 찾으러 집을 나섰다면 제비꽃을 두 눈에 담아 돌아오길 바란다.
제비꽃은 4월과 5월 사이 길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들꽃이다. 보도블록 사이, 폐건물의 갈라진 콘크리트 틈 사이, 어떻게 이런 곳에 꽃이 피었을까? 싶은 곳에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키는 10cm 남짓으로 자세히 보려면 몸을 낮추어 들여다봐야 할 만큼 나직한 꽃이지만 척박한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꽃을 피우는 무던하고 강인한 힘을 지녔다.
어느 봄날 뜻 모를 울적함에 가라앉은 마음으로 땅만 보며 걷다 빼꼼히 고개를 든 보라색 제비꽃과 시선이 마주친 적이 있다. 마치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듯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던 그날처럼, 올봄 당신도 한 번쯤 선물 같은 제비꽃과 마주하면 좋겠다. 바삐 내딛는 걸음 속에서도 한 번씩 고개 숙여 당신만의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놓치지 말길.



지금껏 당연히 여겨온 일상이 요 몇 년 사이 더 이상 일상이라 말할 수 없게 되었지만, 어김없이 찾아와 얼굴을 내미는 봄날의 꽃을 통해 작은 위로를 받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다. 봄이 왔지만, 나만 그대로인 것 같고 팍팍해진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다면, 집을 나서 가까운 동네 꽃집에 들러 오로지 나만을 위한 꽃을 사보길 추천한다.
창가 또는 식탁 위에 올려 놓으면 매일 보던 익숙한 풍경이 조금씩 새롭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소한 행위 하나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생기 있게 만들고 또 풍요롭게 하는지. 모두가 눈부시도록 황홀한 봄을 마음껏 누리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내 일상으로 꽃을 초대한다.
Photograph / 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