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GEEP>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샘앤지노 : 안녕하세요. 사진을 베이스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샘앤지노입니다. 저희는 문화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다가 결혼 후 자연스레 ‘둘만의 프로젝트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작업하게 되었어요. 아직은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웃음)

사람들의 취향과 세계를 초상으로 담은 첫 프로젝트 <Hidden Portrait>에 이어 두 번째 프로젝트 <Wave>를 선보이셨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지노 :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저는 경상남도 통영의 작은 섬 ‘욕지도’에서 태어났어요. 종종 섬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다녀오곤 하는데, 그때 배에서 바라본 파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둔 것이 <Wave>의 시작입니다.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파도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노 : 저희 둘 다 ‘Wave 05’를 가장 좋아해요. 제일 처음 찍은 파도여서 애착이 가요. 이 장면을 찍었을 때는 이것저것 마음 가는 대로 카메라를 들었던 시기예요. 사진으로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 없이 자유로운 상태의 제가 바라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샘 :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워서 유독 마음에 든다고 해야 할까요. ‘Wave 05’를 본 주변인들의 반응이 제각각인 게 흥미로웠어요. 강한 생명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프고 먹먹하거나 두려운 기분이 든다고도 하고요. 한 친구는 ‘왠지 큰 파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평소 서핑을 좋아하는 친구거든요. (웃음) 같은 파도를 보면서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는 지점이 신기하고 묘하더라고요.

Wave 05

파도를 사계절로 구분하셨어요. 파도의 모습은 계절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요?

샘 : 작품을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계절별로 파도를 나눴지만, 실제로 파도는 시간이나 계절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저 그날의 날씨에 영향을 받을 뿐이에요. 봄에도 겨울 같은 파도를, 겨울에도 봄 같은 파도를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죠. 바라보는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파도는 보인다’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

작업 과정이 궁금해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지노 : 저는 주로 집으로 가는 배 위에서 촬영해요. 도착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마음에 드는 파도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정신을 잘 차리고 있어야 하죠. 최대한 특징이 잘 담길 수 있도록 파도에 포커스를 맞춰 찍어요. 특히 풍경이 아니라 사람을 찍는다고 생각해요. 파도도 사람처럼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어서 매번 다른 얼굴을 기록하는 거죠.

Wave 06(좌), Wave 07(우). 폭풍주의보가 내린 늦은 오후의 파도. 파도와 석양이 만나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포말이 마치 불꽃같다.

변화가 많은 배 위에서 촬영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지노 : 실제로 해일을 겪어 보신 아버지는 태풍이 올 때 파도가 정말 멋지다는 얘기를 종종 하셨어요. 위험한 것을 알기에 아무리 멋있어도 못 찍겠다고 조용히 생각했죠. 한번은 겨울에 고향을 내려갔는데 폭풍주의보가 내렸어요. 육지로 돌아오는 길,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배가 흔들리니 배에 익숙한 저도 처음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샘 : 진호가 파도를 찍을 때 저도 옆에서 영상을 찍곤 하는데, 그날은 위험해서 선실에 남아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도 소식 없는 진호가 혹시 바다에 빠진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그를 찾아 나섰죠. 바닥이 꽁꽁 얼어 몇 번씩 넘어지며 갑판으로 갔는데, 진호가 난간에 몸을 기대고 파도를 찍고 있더라고요. 그 앞에는 형체를 알 수 없게 커다랗게 변한 파도가 새하얗게 부서지고 있었고 그 모든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보였어요. 너무 무서운데 동시에 웅장하고, 아름다웠어요.

 

지노 : 아버지 말씀처럼 이토록 멋진 장면은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에만 허락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은 따듯하고 온화하게만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많은 분이 이 파도를 제일 좋아해 주셨어요. 아마 이런 장면은 다시 찍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음)

“부모님이 욕지도에서 운영하시는 슈퍼 입구에

‘태어나 보니 섬이었다’는 어떤 시인의 문장이 적혀 있어요.

섬은 제가 그저 태어나고 자란 곳이에요.”

욕지도는 통영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성게를 따먹으며 놀고 비바람이 심한 날엔 가까운 섬에 사는 친구들이 학교에 못 오는 날도 종종 있는. 17살의 지노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섬을 떠나 홀로 육지에 왔다. 어느새 가족과 지낸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더 많지만, 여전히 섬은 그를 가만히 품어주는 고향집이다.

작가님에게 바다는 어떤 존재인가요?

지노 : 바다는 늘 복잡한 기분이 드는 존재예요. 평온하고 쓸쓸하고 두렵고 먹먹한 감정 모두를 느끼게 하죠. 엄마가 큰누나를 배 안에서 낳았어요. 병원으로 가던 길 바다 한가운데서 누나가 태어났어요. 제가 아주 어릴 때 한밤중에 엄마가 갑자기 쓰러진 적도 있어요. 동네 분들께 급하게 연락해서 배를 빌려 타고 육지로 갔는데 그때 배 위에서 바라본 어두운 바다의 모습은 잊히지 않아요. 바다를 곁에 두고 살면 생명이 탄생하고 생이 소진되는 일,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계획할 수 없어요.

 

샘 : 저에게 바다는 없던 풍경이었어요. 진호를 통해 그리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새롭게 보게 됐죠. 바다에서는 내가 원하는 날씨나 원하는 장면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매번 새로운 파도를 만나고 그에 맞춰 사진을 찍는 과정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바다뿐만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어떤 태도를 배우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에요.

Wave 01. 작가는 파도를 통해 넘실거리는 감정을 바라보고, 자신을 투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노 : 작년에는 좋은 기회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전시를 열 수 있었는데요.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분들과 협업을 하게 되어 시야가 조금 넓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올해에는 통영에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봄과 여름을 보낼 예정이에요. 지구가 좀 더 안전해지면, 다른 나라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샘 : 꼭 이루고 싶은 꿈은 저희 작업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거예요. 사진 프로젝트를 하며 많은 분들이 저희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셨어요. 그 마음이 큰 힘이 되어 저희가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방법은 못 찾았지만, 고마운 마음과 에너지를 나누고 싶어요.

INFO

Wave : 집을 오가며 기록한 파도의 얼굴

작가명

샘앤지노 (Sam&Jino)

전시 기간

2022.5.20(금) ~ 7.31(일) 

주소

 경남 통영시 명정동 249-4 통영 잊음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Photograph  /  샘앤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