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상에 숫자를 부여해 세계 공통의 컬러 언어를 만든 기업, 컬러 컨설팅으로 브랜드와 소비자에게 색채의 힘을 전하는 기업, 그리고 매년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기업. 글로벌 색채 전문 기업 ‘팬톤’의 활약은 종횡무진하다. 스펙트럼처럼 다채로운 팬톤의 행보를 짚어보고, 실제 팬톤 제품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 글
- GEEP
색채계의 올어라운더 ‘팬톤’
하나의 색을 두고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저마다 다양하다. 몇 해 전 인터넷상에선 테니스공 색깔을 두고 노란색 vs 초록색으로 파가 나뉘어 의견이 분분했다. 국제 테니스 연맹이 “테니스 공의 공식 색상은 ‘옵틱 옐로(Optic Yellow)’입니다”라는 답변을 내놓으면서 색깔 논란은 종결됐지만, 이와 유사한 경우를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팬톤(Pantone)’은 색깔을 둘러싼 크고 작은 오해와 혼선을 방지할 수 있도록 특정 컬러에 일련번호를 붙여 색의 표준을 제시한 색채 전문 기업이다. 1963년 팬톤이 개발한 PMS 시스템(Pantone Matching System)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작업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같은 색을 공유할 수 있도록 색에 관한 ‘공통 언어’를 제시했다. 이후 약 60년이 흐른 지금,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디자이너와 생산자 간의 공통 컬러 언어로 자리 잡아 인쇄 산업뿐만 아니라 의류, 리빙, 액세서리 등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쳐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팬톤의 진화는 컬러의 표준을 제시하고 정의하는 역할을 넘어 컨설턴트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팬톤 색채 연구소(The Pantone Color Institute)의 컬러 이코노미스트와 컬러 심리학자들은 각 브랜드의 콘셉트, 핵심 가치에 따라 맞춤형 컬러 솔루션을 제안한다. 색채 심리학과 브랜드 정체성을 고려하여 팬톤이 추천하는 컬러 팔레트는 색상이 지닌 강력한 힘을 통해 브랜드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확실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당대 시대상과 이슈를 반영한 ‘올해의 컬러’
팬톤 색채 연구소는 2000년부터 당대의 주목할만한 사건 사고와 패션,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의 정보를 취합하여 연구·분석한 다음 ‘올해의 색’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이는 뷰티·패션 등의 디자인 업계뿐만 아니라 마케팅 분야 전방위에 걸쳐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
2022년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조합한 ‘베리 페리(Very Peri)’로 제비꽃을 닮은 색상이다. 팬톤은 기존 컬러북에 없는 새로운 색상을 선보이며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글로벌 시대정신과 과도기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전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극심한 고립에서 벗어나 디지털 세상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제안되는 현실을 반영하고, 미래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가능성과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색을 창조했다는 설명이다.


매년 팬톤의 올해의 컬러 발표 이후 관련 상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지나친 상업화에 일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지만, 팬톤의 발표에 한 번씩 이목이 집중되는 흐름은 어쩐지 고착화된 듯하다. 디자인 업계의 비판과 우려를 무시할 순 없겠지만, 훗날 올해의 컬러를 한 데 모으면 후세에 유의미한 풍속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으니 꿋꿋이 그들만의 의미를 담아 올해의 색을 선정해 주었으면 한다. 팬톤의 발표를 일 년에 한 번 있는 작은 이벤트처럼 흥미롭게 바라보며 기대하는 에디터 1인의 소소한 바람이다.
MINI INTERVIEW
팬톤, 어떻게 생각하세요?
패션, 편집, 브랜딩 등 디자인 영역에서 가장 밀접하게 팬톤 제품을 접하는 디자이너들은 팬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디자이너가 실제로 사용 중인 팬톤 제품과 올해의 컬러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Interviewee 1. 편집·브랜딩 디자이너 ‘송’
팬톤 솔리드 칩 (자료 출처 : PANTONE)
자기소개 부탁한다. 4년 차 브랜드 디자이너로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다양한 브랜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편집 디자인 직무로 인쇄물 기반의 디자인 제작물을 작업했지만, 요즘은 주로 온라인 기반의 작업을 진행한다.
평소 작업 시 활용하는 팬톤 아이템, 제품은 무엇인가? ‘팬톤 솔리드 칩(Pantone Solid chip Uncoated/Coated)’을 주로 사용한다. 주 매체인 온라인 작업물에 기준을 두어 RGB 컬러를 먼저 잡고, 인쇄가 필요할 때 해당 RGB 컬러와 가장 유사하게 보이는 팬톤 컬러를 찾고자 컬러칩을 사용한다. 최근 유료로 바뀐 온라인 툴 ‘팬톤 커넥트(Pantone Connect)’에서 자동으로 팬톤값을 찾아주기도 하지만, 인쇄물의 경우 눈으로 확인하는 단계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컬러칩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편이다. 컬러칩을 잘라 모아둠으로써 전반적인 컬러 조화도 확인할 수 있고 두고두고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팬톤에서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컬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작업에서 이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면? 작업물에 올해의 컬러를 활용한 기억이 별로 없다.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해당 브랜드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컬러를 선별해야 하고, 또 장기적인 브랜드 비전을 바라보며 제작하기에 ‘올해의 컬러’를 꼭 활용해야 할 명분이 없다. 다만, 올해의 컬러가 발표되면 선정 이유와 의미를 찾아보며 이런저런 영감을 얻는 편이다. 예를 들어 밀레니얼 시대가 도래하면서 희망찬 느낌의 컬러를 선정하거나, 팬데믹 이후 다소 차분하고 우울한 컬러를 선정하는 모습을 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
디자이너에게 팬톤 제품과 컬러 가이드는 어떤 존재인가? 보편적으로는 일의 능률을 올려주는 수단이자 디자이너가 그리는 이미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팬톤 제품이 없었다면 웹과 인쇄물의 컬러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을 것이다. 디자이너의 업무 강도도 그만큼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향후 팬톤에서 출시되었으면 하는 제품이 있다면? 솔리드와 컬러 브리지가 합쳐진 컬러칩이 있다면 좋겠다. 지금은 솔리드와 컬러 브리지, 또 코티드와 언코디드 등 대부분 따로 나눠서 판매하고 있는데, 한눈에 볼 수 있고 가격 부담도 덜 수 있게 하나로 합쳐진 제품이 나온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Interviewee 2. 7년 차 의상 디자이너 ‘뢍’
폴리에스터 스와치카드 (자료 출처 : PANTONE)
자기소개 부탁한다. 7년 차 의상 디자이너다. 스트리트 컬처를 기반으로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컨템포러리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다.
평소 작업 시 활용하는 팬톤 아이템, 제품은 무엇인가? 사실 작업할 때 팬톤 제품을 자주 활용하는 편은 아니다. 부자재 컬러 매칭 시 컬러칩을 잠깐 사용하는 정도? 염색 업체와 상담할 때 팬톤 컬러칩 색상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 이 컬러보다 한 톤 높게, 낮게 등 원하는 색감이 어느 정도인지 서로 이해하기 쉽도록 지표로 삼는다.
팬톤에서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컬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작업에서 이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면?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올해의 컬러가 발표되면 주목하지만, 디자인에 100% 그대로 반영하는 건 아니다. 팬톤에서 발표한 올해의 컬러가 꼭 그 해에만 유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고객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색상은 무난한 모노톤이다. 팬톤에서 발표한 올해의 컬러는 참고용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의상에 어떤 포인트를 주고 싶다면, 올해의 컬러 계열에서 비슷한 색감을 선정하여 활용하거나 동양인 피부 톤에 맞춰 살짝 수정 후 활용하는 정도다.
디자이너에게 팬톤 제품과 컬러 가이드는 어떤 존재인가? ‘컬러는 팬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말이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시즌 컨셉을 정할 때 기준점이 되긴 하니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참고삼는 수준이다. 브랜드마다 지향하는 컨셉과 톤앤무드가 가장 중요하다. 거기에 맞춰 팬톤의 트렌디 컬러를 조금씩 반영하니 올해의 컬러는 ‘참고하기 좋은 도구’ 정도로 말하고 싶다.
향후 팬톤에서 출시되었으면 하는 제품이 있다면? 글쎄? 지금 나와있는 제품도 모두 좋으니 가격만 조금 낮춰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