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4,500만원짜리 폐가를 샀다. 코로나로 인해 회사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도시 생활에 회의를 느낄 때쯤 퇴사를 고민하다 홧김에 지른 것이다. 좌충우돌 셀프 리모델링을 거쳐 텃밭을 일구고 일을 병행하며 생각과 달리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곳의 풍경과 이웃들에게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 글
- 최 별
나의 새로운 풍경

어느새 11월, 추수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시즌이 왔다. 시골에 온 후부터 매일 같은 듯 다른 풍경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시골살이 일 년 차, 가장 놀라운 것은 씨앗이다. 씨앗을 심고 그 조그마한 게 언제 나올까 가만히 기다려 봐도 땅은 미동이 없다. 결국 제풀에 지쳐 돌아서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등 뒤에서 초록 떡잎을 피워 내곤 한다. 모든 것들이 그렇다. 저렇게 작아서 뭐가 열릴 수 있을까 싶던 가지 줄기였는데, 비 온 뒤 반나절 만에 팔뚝만 한 가지가 달린다. 멀리서 볼 때는 그대로 뿌리내린 듯 변함없는 풍경들이 1년 사이 끊임없이 피고, 진다.


풍경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내가 있고, 또 그런 나를 아주 재미있게 관찰하는 동네 친구들이 있다. 115년 된 폐가 앞에 멀뚱히 서 있던 나에게 1년 만에 펼쳐진 다정한 풍경이다.
예를 들면 어르신들과 나의 관계는 이러하다. ‘옆집 친구 1호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에서 하품을 한 번 하고는 눈 돌리면 보이는 우리 집 텃밭을 구경하며 하루를 시작하신다. 그의 무표정한 눈에는 ‘저기 풀 올라오는디, 저거 뽑아야 할 것인디.’ 하는 무심한 걱정이 묻어 있다. 나 역시 텃밭에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는 풀을 보긴 했으나 “아이고, 또 일거리구나. 하루 정도는 뭐 어때, 내일 뽑지 뭐” 하고 그냥 못 본 척하기 일쑤다. 반면, 옆집 친구 1호 할아버지는 늦은 저녁까지도 굳이 우산까지 쓰고 예보에 없던 장대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잡초를 구경하고 있다. 사실 그의 무심한 눈빛 뒤에는 재밋거리를 발견한 자의 웃음이 담겨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는 과장을 조금 더해 무릎까지 자란 잡초를 보며 망연자실한 나를 꼭 빼먹지 않고 보고 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그제야,
“이거 다 베어버려야 혀! 허허”
그의 웃음에 나도 머쓱하게 웃어 버렸지만, 왠지 그의 구경거리가 된 나의 일상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자연의 기분에 따라 바뀌는 날씨와 노동의 산물인 농사가 평생의 업이요, 생활인 그들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비록 올해 서른셋이 되었지만) 뒹구는 집은 얼마나 재미있는 드라마인가. PD가 되고 나서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뿌리내리는 삶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일상 같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내믹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낯선 시골에서의 일상은 단 1%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물론 도시에서는 고작 춥고 더운 게 전부였던 계절이 여기에서는 매일 바뀌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과연 도시에 사는 나의 친구 중, 계절이 매일 바뀐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니 이 글에도 더 설명하려고 들지는 않겠다.
무섭게 흘러가는 계절에 쫓겨 다닌 나의 일 년은 마음도 몸도 참 바빴다. 첫 여름까지는 내 모든 전세자금과 전 재산을 들였던, 문화재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115살의 ‘집’님이 혹시나 아플까, 무너질까 발을 구르느라 동동거렸다면, 나중에는 땅을 부쳐 먹는 동네살이를 따라가기 위해 쉴 새 없이 바쁜 가을을 보냈다.

도시는 시간이 곧 돈인 세상이었다면, 이곳은 땅이 곧 돈이다. 동네 친구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뜻으로 비록 다 먹지 못할지라도 그들이 하는 방법으로 빈 땅을 일구고 싶었다. 옆집 어머님이 하라는 대로 삽질을 하고 고랑을 팔 때는 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가 싶다가도, 비어 있던 땅에 작고 파란 무엇인가 올라오다 어느새 열매 맺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도시에서 직업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 같았던 내가, 뭐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만약 직업을 잃게 되거나 도시에서 실패하더라도 이곳이라면 나 자신을 먹여 살릴 수는 있을 것 같아서. 가난할지언정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여지를 알게 되어서. 고작 상추 한 잎에도 울컥했나 보다.
자연의 리듬에 맞추기 위해

올봄에는 농사를 짓는 것보다 때맞춰 작물을 먹어 치우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정도면 얼추 새로운 생활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착각이었다. 도시의 마트에서는 신선하고 가지런히 포장되어 있던 채소들이 텃밭에서는 수확의 때를 놓쳐 버리면 얼마나 성을 내는지, 제대로 경험했다. 내 팔 길이만 한 가지를 뿌리째 뽑아 버리기도 했고, 제때 대를 대주지 않았던 방울토마토 밭은 무성한 정글이 되어 지금도 접근금지 구역이다.
나는 수도 없는 노동의 산물들을 그저 썩혀 버렸다. 서울에서는 상상 못할 부지런함으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아침을 해 먹었지만 글쎄, 땅의 생산성이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제야 오랜 말이 생각났다. ‘시골 사람들은 좋은 것만 먹고 다 버린다고.’ 서울 촌놈의 무식한 물욕으로 보약으로 쓸 수 있는 제철이 지나 썩어가는 텃밭 작물들과 그렇게 여름을 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가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치킨을 시켜 먹던 내가 이제는 집에 라면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다. 가지나 호박 등은 맛있게 익었을 때 미리 따서 냉장고에 두었다가 바로 꺼내 먹는다. 올 6월에 수확한 양파와 마늘을 필두로 대부분의 식사는 굽거나 볶는 정도의 조리가 전부다. 어느새 이 삼삼한 밥상이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외출해도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는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오늘 나의 일상을 보자면 참 심심하기 짝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텃밭을 한 번 둘러보고, 하품을 한 번 한 뒤 채소를 냉장고에서 꺼내 굽고, 스크램블 에그를 곁들여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러고는 오전 내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며 일기를 끄적이다가 면장님과 내년 오느른 프로젝트를 위해 전화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10개월 동안 반복하여 다양한 것들을 수확하는 사이에 다시 내년을 준비하는 자리에 돌아와 있다.
이렇게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냈는데 여전히 30만 구독자들은 나의 삶이 평화롭다고 말하고, 이 집에 직접 와서 인터뷰한 기자님은 무려 나의 삶을 ‘쉼의 농도가 높은 삶’이라 명명했다. 가끔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쁨이 억울하기도 하고, 여유롭지 않다 털어놓기도 하지만 결국 나도 인정하고 만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부산스러웠지만 일 년간 참 잘 쉬었다고. 부지런히,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나를 참 잘 키웠다고. 이제 회사에서 가끔은 배짱을 좀 부려도 되겠다고. ‘사회인 최별’이 어쩌다 실패할지라도, 나 자신만큼은 먹여 살릴 수 있고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집을 가꿨다고.
어쩌면 일 년 전과 같은 풍경, 어쩌면 일 년 전과 다른 나. 정글이었던 봄의 텃밭을 정리하고 가을에는 겨울 김장을 위한 배추와 무를 심어 두었다. 오후에는 동네에 있는 오느른 작업실로 출근하기 전에 잘 말려 둔 고추를 빻으러 방앗간에 잠깐 들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