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늘 우리 가까이에 존재해 왔다. 고대부터 인간은 꽃과 식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지어왔다. 꽃은 사랑과 비극을 담은 신화의 주제가 되고, 때로는 연인에게 전해지는 사랑의 증표가 되었다. 문학에서 꽃은 가장 오래된 이미지이자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존재다.
- 글
- GEEP
그리스 신화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이웃 나라의 신화가 섞여 구전되어 왔다. 시대를 거쳐 이야기가 변형되면서 과장되고 모순된 부분이 많지만, 문학으로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책 <변신이야기>를 집필한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무한한 식물의 생명력을 이해했다. 그는 님프(요정, nymph)들을 꽃으로 변신시키길 좋아했다. 문학가들의 눈에 아름다운 꽃은 애처로워 보였는지, 신화 속의 꽃은 대개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일지라도 꽃의 오래된 사연을 알고 나면 더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데이지 Daisies (희망, 순수, 평화)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산책로에 작은 흰 꽃 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다. 봄의 선발대 데이지는 ‘낮의 눈(Day’s eye)’을 뜻하며, 말 그대로 태양이 충분히 뜨거워져야 개화한다. 들판에서 가장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이 생명력 강한 야생화는 ‘한결같은 마음’, ‘사랑의 약속’이라는 의미로도 연결된다. 우리가 흰 데이지 꽃잎을 하나씩 뜯으며 ‘사랑한다, 안 한다’를 점치는 놀이에서도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꽃이 되어 사랑을 지킨 벨리데스
따뜻한 4월의 숲속에선 정령들의 축제가 열리곤 한다. 연인과 함께 무도회에 참석한 나무의 님프 벨리데스는 누구보다 우아하게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계절의 신 베르툼누스는 벨리데스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고,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끈질긴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벨리데스는 이기적인 신의 사랑에 지쳐 정조의 신 아르테미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요. 저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연인이 있습니다. 제발 나를 지켜주세요.” 그 기도를 들은 아르테미스는 엉뚱하게도 벨리데스를 꽃으로 변신시킨다. 데이지의 학명 벨리스(Bellis)는 벨리데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들판의 꽃이 되어서야 원치 않는 사랑을 피할 수 있었던 벨리데스는 이제 사람들에게 평화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2. 캄파눌라 Campanula (감사, 충실, 정의)
줄기 하나에 꽃송이가 오밀조밀 달린 캄파눌라는 햇빛을 좋아하는 봄꽃이다. 캄파눌라(Campanula)는 라틴어로 ‘작은 종’을 의미하며 서구권에서는 ‘Bellflowers’, 한국에서는 ‘초롱꽃’으로 불린다. 티 없이 맑을 것만 같은 이 꽃에는 한 소녀의 용감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용감한 공원지기 이야기
여신 헤라의 과수원을 지키는 공원지기 캄파눌라는 어느 날 황금사과나무를 훔치러 온 도둑을 발견한다. 그녀는 눈에 띌 위험을 무릅쓰고 은종을 울려 공원을 지키는 용 라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하지만 눈치 빠른 도둑은 캄파눌라를 죽이고 도망친다. 이후 꽃의 신 플로라는 캄파눌라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녀를 아름다운 초롱 방울 꽃으로 환생시킨다. 신화 속에서 용감함을 보여줘서일까. 초롱꽃은 어디선가 영롱한 종소리를 내며 우리의 정원과 보금자리를 지켜줄 것만 같다.
3. 해바라기 Sunflower (숭배, 기다림)
넓고 둥근 얼굴에 노란 왕관을 쓰고 있는 해바라기는 대표적인 여름꽃이다. 이름에서 연상되듯 해바라기의 꽃봉오리는 태양의 가장 밝은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 흥미로운 점은 해바라기는 한 송이 꽃이 아니라 노란 주변화를 두른 작은 갈색 낱 꽃의 무리로, 살아있는 꽃다발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태양을 바라보는 특유의 굴광성 때문인지 해바라기는 예전부터 헌신과 기다림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뜨거운 사랑이 만들어낸 비극
물의 님프 클리티에는 태양신 헬리오스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헬리오스는 님프 레우코테아에게 빠져 클리티에를 소홀히 대한다. 질투에 사로잡힌 클리티에는 레우코테아의 아버지에게 그녀에 대한 루머를 퍼뜨리고, 화가 난 아버지는 딸을 희생시키고 만다. 레우코테아의 죽음으로 헬리오스가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뀐다. 클리티에는 식음을 전폐한 채 헬리오스를 그리워하다 꽃으로 변했고, 평생 태양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그 꽃을 ‘헬리안투스(Helianthus)’ 또는 ‘해바라기(Tournesol)’라고 부른다. 비록 어긋난 사랑에 비극이 되어 피어난 꽃이지만, 해바라기가 가득 품고 있는 씨앗과 건강한 기름은 현재 우리에게 풍성한 사랑을 베풀고 있다.
꽃에는 이토록 다양한 사연이 담겨있다. 아폴론의 비극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히아신스, 아프로디테의 눈물에서 장미꽃이 핀 이야기 등 신화에는 끝이 없다. 꽃의 사연을 들었다면, 이제는 직접 만져보고 눈에 담을 차례다. 신화 속 꽃들과 함께 계절 꽃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계절 꽃이 있는 화원
꾸까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꾸까(kukka)는 핀란드어로 ‘꽃’을 의미한다. 꽃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인 만큼 저렴하게 꽃을 구매할 수 있는 ‘파머스 마켓’부터 컨셉이 있는 ‘플라워 클래스’ 그리고 꽃 정기구독 서비스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일상에서 꽃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롯데월드몰에 위치한 꾸까 ‘잠실점’은 작은 티카페를 함께 운영한다. 가을옷을 입고 있는 마네킹 사이를 걸으며 샘솟는 구매 욕구로 정신을 못 차릴 때쯤 마치 비밀의 화원처럼 등장하는데, 꽃을 사야 한다는 부담 없이도 향긋한 티 한 잔과 함께 계절 꽃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꾸까가 추천하는 가을꽃



국화 Chrysanthemum (평화, 지혜)
국화는 낮의 길이가 짧아져야 꽃을 피우는 단일 식물로, 입추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가을에 어울리는 은은한 향이 나며, 수명이 길어 집안에 두기 좋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흰 국화 외에도 다양한 형태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국화의 꽃말은 색깔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노란색과 빨간색은 사랑을 의미해 연인에게 마음을 표현할 때 선물하기 좋다.
다알리아 Dahlia (감사)
정열의 나라 멕시코가 고향인 다알리아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는 꽃으로, 커다란 얼굴에 오밀조밀한 꽃잎을 가지고 있다. 가을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앤틱한 색상부터 그래픽으로 뽑아 놓은 듯한 원색까지 자연이 가진 화려함을 증명해낸다. 가을맞이 인테리어를 생각하고 있다면 다알리아 한송이만 놓아보자. 단번에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 Common cosmos (순정)
가을의 꽃집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얼굴의 코스모스를 만날 수 있다. 은은한 색상과 가느다란 줄기의 라인은 다른 꽃과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난다. 심플한 화병에 툭 꽂아 창가에 두어도 좋다.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코스모스는 집안에 작은 들판을 옮겨 놓은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INFO
꾸까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운영
월-목 10:30~20:00, 금-일 10:30~20:30
주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5층
문의
02-3213-2514
홈페이지
Photograph / G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