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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페이퍼 마블링’이라고 불리는 마블링 기법은 17세기 유럽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책을 장식하는 기법이 상당히 발달했는데, 마블링도 그중 하나로 물 위에 유성 물감을 띄워 대리석(Marble)과 비슷한 패턴을 만들고 종이에 찍어내 책 표지나 내지를 장식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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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링 아티스트 조경민 작가

안녕하세요 작가님, GEEP 독자분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마블링 아티스트 조경민입니다. 현재 ‘스튜디오 민꼬’를 운영하며 마블링 기법을 활용한 여러 가지 개인 작품 활동과 협업 프로젝트,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 초 공방을 정리하고 해외에 체류 중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충전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활동도 계획하고 있어서 리서치 겸 미국에 다녀왔고요. 얼마 전에는 밀라노 디자인 페어에 가서 새로운 영감을 많이 얻고 왔습니다. 

작가님은 2019년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크게 주목받으셨어요. 해당 공모전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셨나요? 

지인들과 사소하게 나눴던 농담이 계기였습니다. 마블링 작업을 시작할 당시, 이 기법을 적용할 수 있는 가장 ‘불가능한’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데, “냉장고에 마블링을 입혀서 주방에 가져다 놓으면 정말 센세이셔널하겠다”는 말을 했었죠. 그땐 거대하고 무거운 전자제품에 마블링 패턴을 입히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작업을 하다 보니 전통 공예기법과 모던한 주방가전의 조합이 더 이상 불가능한 아이디어가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예전에 나눴던 농담이 도화선이 되어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천여 명이 넘는 신진 작가들이 참여한 대규모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가님의 작품이 더 궁금해져요. 대상작 ‘플로팅 링스’는 어떤 모티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나요? 제작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주세요. 

플로팅 링스 작업 과정(사진 제공 : 조경민)

플로팅 링스는 수면 위에 떠 오른 수백 개의 동심원이 모티프예요. 물 위에 물감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겹겹의 동심원을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했는데, 작은 입김이나 미세한 움직임에도 잘 흔들리기 때문에 동심원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 굉장히 정적이고 반복 작업을 필요로 했어요. 이 과정에서 제가 느꼈던 안정과 편안함을 주방 공간으로 확장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최종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 작업 과정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에 메이킹 필름을 찍었는데, 특별 제작한 대형 수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준비할 것도 많았고 마블링이 우연성에 기반을 둔 작업이다 보니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만들기 어려워서 촬영팀이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마블링은 ‘우연이 만드는 기법’이라고 해서 작업 과정도 자유롭고 순조로울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작가님은 보통 작업하실 때 어떤 흐름으로 진행하시나요? 색감과 패턴 등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두는 편인가요?

마블링이 정말 매력적인 이유가 ‘물’이라는 동적이고 유기적인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이에요. 물은 작은 충격이나 입김에도 잘 흔들리고, 물감을 뿌리는 미세한 힘의 차이에 따라서도 결과물이 달라져요. 작업자뿐만 아니라 작업한 날의 습도나 온도의 영향도 받기 때문에 복합적인 관점에서 따져볼수록 100% 컨트롤이 어려운 작업이죠. 보통 많은 공예 작업이 오랜 시간 연습하면 완벽에 가까운 습득이 가능한데, 마블링은 긴 시간 해왔음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제점이 불쑥 튀어나오고 예측하지 못한 결과물이 나와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요.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늘 가장 마음에 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딱히 선호하는 패턴이나 색감도 없어요.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충동적이고 자유롭게 작업하는데, 그게 마블링이 가진 매력과 즐거움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동안 제작해 오신 많은 작품 가운데 특별히 아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두 가지 정도 소개해 주세요.

첫 번째로 마블링 기법을 도자에 처음 적용한 시리즈를 소개할게요. 우연성에 초점을 맞춰 작업했고, 패턴을 입히는 기물도 손으로 하나씩 랜덤하게 제작했어요. 패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의 고유한 작품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은 2017년 가로수길에 위치한 ‘플라워 베이커리(Flour Bakery)’에 설치했던 영상 작업물입니다. 제 작업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프로젝트로 기획과 촬영, 편집은 노민구 디자이너님이 맡아 주셨어요.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아티스트로서 무언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접근과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오브제가 아닌 공간을 통해서도 작품이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프로젝트입니다. 

작가님께서 그동안 선보인 라이프스타일 오브제 외에도 마블링을 적용한 작업 스펙트럼이 확장되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향후 어떤 작품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요즘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공간이나 사물을 보면, 편리성이나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춰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좀 더 자유롭게 풀어져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 마블링 패턴이 가지는 자유롭고 변칙적이며 유기적인 아름다움을 생활과 밀접한 사물에 접목해 왔어요. 일상에서 이런 소품을 자주 접하면 경직된 생각과 마음을 이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앞으로는 타일이나 벽지, 패브릭 등 공간을 구성하는 좀 더 큰 스케일의 구조로도 확장하여 작업해 볼 계획입니다.

국내외 온·오프라인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직접 보거나 구입할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올해 공방을 정리한 가장 큰 이유가 ‘스튜디오 민꼬 Phase 2’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에요. 팬데믹을 경험하고 수업을 진행하면서 작품을 전시하는 오프라인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비대면으로 마블링을 경험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관심이 옮겨졌는데, 오프라인 공간을 정리하고 나니 활동 범위가 오히려 더 넓어지고 자유로워지더라고요. 해외 활동에 대한 계획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수업이나 작품 모두 인스타그램과 같은 온라인 매체를 중심으로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작가님만의 메시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티스트로서 바람과 향후 목표에 대해 알려주세요. 

마블링 클래스를 운영하고 도자 제품도 만들고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간혹 제가 하는 작업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 고민하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마블링 아티스트’라는 다소 포괄적이고 알 수 없는 자기소개가 만족스러워요. 앞으로도 장르를 불문하고 마블링 작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싶어요. 어떤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즐거움’을 위해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그게 제 작업을 보는 분들에게도 다양한 시각으로 전달되면 좋겠어요. 

INFO

스튜디오 민꼬

인스타그램

Photograph  /  G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