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동에 살던 3년 동안 동네를 참 많이 걸어 다녔다. 석촌호수변 산책로는 인구 밀도가 너무 높아 들어가는 것조차 번번이 포기했지만, 석촌호수를 찍고 돌아오는 약 40분가량의 산책 코스를 애용했다. 집에서 나와 신천역(지금은 잠실새내역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을 지나 아파트 단지 몇 개를 지나면 저만치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그때, 갑자기 인도가 활짝 넓어지는 구간을 만난다. 폭이 거의 작은 운동장만 한데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넓어진 인도의 중간 즈음 롯데월드 정문이 나타났다. 여기가 정문이었나? 할 정도로 뜬금없이 말이다.
- 글
- 이윤석
口(입 구, 입구)


롯데월드 정문은 유럽 여행 중 만났던 여러 나라의 성당 건축양식들을 절충한 모양을 하고 있다. 아치형(입구의 둥근 상부는 아치볼트(archivolt)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독자들에게 친숙한 용어를 사용하고자 아치로 표기했다) 천장 아래는 장미창 대신 대형 원형 시계가 있고, 문설주에는 울상을 지은 예수의 열두 제자 대신 롯데월드의 마스코트인 로티, 로리가 그림 조각이 되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은색과 아이보리색의 반사형 타일들은 다양한 패턴들로 변주되어 빈 곳을 적절히 메꾸고 있다. 맞은편 아파트 거실과 얼굴을 맞대고 있기 때문일까? 꾸민 듯 안 꾸민 듯 어쨌든 정성스럽다. 입구는 또 얼마나 큰 지 건물 높이만 하다. 건축물이 생명체라면 롯데월드는 입이 몸만큼 큰 동물이었을 것이다.
롯데월드가 개장했던 30년 전을 상상해 본다. 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아 발갛게 상기된 도시에 새로운 성취가 열렸다. 정문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로 운반된 수많은 사람들이 2열 종대로 줄 맞춰 입장을 기다린다. 저마다 꿈속에서 보았던 신비한 세계를 상상하고 있다. 당시 롯데월드는 그들의 성전이었다. 올림픽을 치르며 성취한 건설 기술의 세계화를 기념하고, 그 성취를 통해 건설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제단이었다. 길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은 광장도, 건물 높이와 맞먹는 화려한 입구도 롯데월드라는 국가적 성전에는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환상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반짝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입구를 (겨우) 넘어 매표소를 지나 롯데월드 어드벤처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몸이 상승하면, 서서히 시야를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유리 돔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다. 90년대생들은 기억할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유난히 ‘미래도시 그리기’를 자주 요청받았다. 도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조차 없었을 아이들은 왜인지 반구형 유리로 덮인 집과 나무들이 우주에 떠 있는 장면을 그려냈다. 어린이들에게 미래도시를 대신 상상해달라고 책임을 전가할 만큼, 2000년대는 어른들에게 두려움의 시공간이었을까? 그 두려움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어린이들이 그린 미래도시는 얇고 투명한 유리 모자를 덮어쓴 채 산소가 없는 우주로부터, 빛이 없는 물속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었다.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약 1만 평의 실내공간을 유리 돔(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유리 천장은 돔(dome) 구조와 볼트(vault) 구조가 혼합된 아트리움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만 롯데월드 건설지에 등장한 상징적 의미로서 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으로 덮고, 올림픽 이전의 지난한 과거가 두려운 우리를 현재로부터 분리했다. 그리고 올림픽이 가져다 준 기술 자본으로 미래를 건설했다. 천장으로 뿜어져 내려오는 빛이라는 기적을 마주할 때 우리는 바깥 세계를 완벽히 잊어버리고 눈 앞에 펼쳐진 해상도 높은 환상을 믿을 수밖에 없다. 올림픽이라는 빅 이벤트를 경험하게 된 유리와 신통방통한 돔 구조의 기능적 안락함, 선진성의 이미지는 그 시기에 지어진 한국의 고층 건물 로비와 아케이드에서 자주 발견되곤 한다. 알고 보면 롯데월드에는 유리 돔이 10개나 있다. 시간 날 때 찾아보는 재미도 꽤 있다.
망루
천장을 한참 바라보니 그제야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6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테마로 세계 여러 나라의 건물들을 한데 모아 두었는데, 정성스레 한껏 멋을 낸 모습이 사랑스럽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에서는 목각인형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는 장면에서 몸에 달린 실과 팔, 다리의 이음매가 사라진다. 목각 인형이 움직이기 위해 존재하는 관절이 피부로 덮여 보이지 않게 될 때 우리는 피노키오가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인식한다. 이와 유사하게 롯데월드에서는 테라리움 속 도시가 만들어진 것임을 인지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현실의 단서들을 지운다. 이를테면 스페인 거리의 건물 지붕에는 주홍빛이 도는 서양식 기와를 한 땀 한 땀 올려놓았고, 네덜란드 거리의 풍차는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으며, 영국 거리의 성벽은 석재 벽돌벽과 지붕을 떠받드는 목재 프레임들이 선연하다.

어드벤처 중앙의 대공간은 그 높이가 50m에 달하며, 천장은 유리로 덮여 있다. 큰 온실과 다를 바 없는 이 공간은 천장 높이가 가장 높은 아이스링크 둘레를 따라 설치된 대형 공조 타워로 온도를 조절한다. 이러한 공조 기술은 공항에서 주로 채택하는 시스템인데, 당대 국내 건설 환경에서 그 기술을 테마파크에 적용한 것은 대단히 실험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유심히 쳐다봐도 에어컨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6m에 달하는 대공간 공조 타워들이 서양식 망루 형태를 하고 너무나 당당한 자세로 서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절대 에어컨이 아니라는 듯 망루 꼭대기에 난 창문 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다. 건축물이 몸이라면 설비는 대략 혈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설비는 냉방, 난방, 수도, 전기, 가스 등을 건물의 구석구석으로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공기를 담당하는 장비들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시끄럽고, 못생겼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이 장비들을 가장 구석진 곳에 몰아 두거나 보이지 않게 가려 놓고 안 보이는 척한다. 망루들은 롯데월드의 가장 높은 환상이다.
모노레일, 열기구


모노레일, 열기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롯데월드를 조감도로 관람할 수 있는 전망대라는 점이다. 건축 분야에서 조감도란 표현하려는 대상을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이 표현하는 기법을 뜻한다. 건물이 땅에 놓였을 때 주변과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스타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분양 자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 붙은 오피스텔 분양 광고를 보자. 이 건물이 강남과 얼마나 가까운지, 어떤 지하철 노선이 언제 개통되는지, 얼마만큼의 투자가치가 있는지 글자들이 소리친다. 그 익숙한 글자들 너머의 익숙한 조감도에는 롯데월드타워만큼 큰 15층짜리 오피스텔과, 4층짜리 상가만큼 높은 지하철 입간판과, 이상하리 만치 가까운 강남이 교묘하게 합성되어 있다. 조감도는 욕망을 그리고, 욕망하게 한다.
내가 롯데월드의 설계자였다면, 롯데월드에 들를 때마다 가장 먼저 열기구에 오를 것이다. 게임 ‘심시티(Sim City)’에서 내가 만든 세계를 전지적 시점에서 내려다보듯이, 열기구에 탄 나는 입에 미소를 띈 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살필 것이다. 놀이기구는 별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어디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지, 지붕 위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지 않은 지. 하지만 롯데월드의 50m 상공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단연 내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풍경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테마파크(롯데월드 어드벤처는 개장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현재는 아부다비의 워너브로스 월드가 기록을 경신했다)를 만든 올림픽 이후의 한국을 자랑스러워하길 바랄 것이다. 우리가 만든 도시와 미래를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아마도 롯데월드를 설계한 그때 그 사람은 롯데월드를 상상할 때 유리 돔 아래를 나는 열기구를 가장 먼저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미래≠환상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롯데월드 정문으로 걸어 나왔다. 모노레일도, 열기구도 두고 나왔다. 도로로 뱉어진 나는 길 위에서 생각했다. 불필요할 정도로 넓은 이 길은 내가 2021년에 석촌호수를 갈 때 지나가라고 만든 길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게 놓인 이 건축물은 사실 어디도 바라볼 필요가 없었던 거구나.
30년 전의 롯데월드는 성전이었지만, 지금의 롯데월드는 자연사박물관이기도 하다. 88올림픽으로 획득한 건설기술로 만들어낸 인공 도시의 눈부신 자연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신-자연사박물관이다. 전시물들이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죽어서 뼈만 남았거나 ‘절대 만지지 마시오’라고 써 붙인 상태가 아니다. 살아있고, 만질 수 있다. 21세기의 신 교통수단으로 주목받던 모노레일이 머리 위 부유하는 레일 위를 유영하고 있으며, ‘신밧드의 모험’은 중년 커플의 추억까지 싣고 10분짜리 트랙 위를 30년 동안 달려왔다.

롯데월드는 과거에 과거의 기술로 만든 미래 공간이다. 그리고 그때 상상한 미래는 우리의 오늘이 되었다. 그런데 롯데월드는 왜 나에게 여전히 미래적으로만 느껴질까? 롯데월드는 환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환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무색해진다. 내가 느꼈던 미래라는 감각은 앞으로 흐르는 시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에서 왔다. 롯데월드에는 이 구석, 저 구석 저마다의 꿈들이 묻어 있다. 새것같이 잘 닦여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롯데월드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