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지원 작가(좌)와 추지영 작가(우)

먼저 <GEEP>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0.1입니다. 2013년부터 함께 그림을 그리며 그림을 담기 위한 틀과 형식도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 이름인 추지영(0)과 추지원(1)에서 따와 0.1이 되었어요.

네 살 터울의 자매 시라고요. 가족이 함께 일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작업을 함께하게 됐나요?

0 (지영 이하 ‘0’) : 어린 시절, 급한 숙제가 생기면 같이 매달려 해결하곤 했어요. 그러다가 어머니의 부탁으로 지인분들께 드릴 생일 카드를 함께 그리면서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을 시작했어요. 0.1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합을 맞춰온 셈이죠.

과제를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라니. 부럽네요(하하). 두 분의 SNS를 보면서 취향이 참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MBTI까지도 INFP로 동일하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그렇다면 작업 스타일도 비슷하신 가요?

1 (지원 이하 ‘1’) : 취향이 정말 비슷해요!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이 부분이 협업의 핵심인 것 같아요. 그리고 평소에 많이 대화하면서 생각을 공유하고 각자 상상하던 이미지를 맞춰 나가는 편이에요.

0.1의 작품에는 무표정한 아이들이 등장해요. 이들은 어떤 인물인가요?

1 :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른들은 크게 반응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의연하게 반응해요. 저희가 목격한 이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무표정한 아이들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 아이들을 통해 파편으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고 있어요.

국내·외 아트북 페어에 꾸준히 나가시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고 계시죠. 가장 좋았던 작품이 있을까요?

0 : 2018년에 작업한 <Still Life>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꽃, 과일 등의 이미지를 담은 아트북인데요. 국내 사전에 ‘정물화’를 검색하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물건들을 그린 그림’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그런데 과연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을까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혹은 태도를 ‘정물’처럼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석고상처럼 표현하기도 하고, 사람과 정물을 같은 색상으로 구성하고 함께 배치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은 해외 페어에 소개할 생각으로 준비했는데, 출국 당일 아침에 작업을 마무리하다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결국 들고 가지 못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어요.

 

1 : 어쩐지 이런 질문을 받으면 <Gap>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노트 한 권을 쓰기 시작할 때와 다 썼을 때 그 사이의 어떤 간극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담은 노트입니다. 마지막까지 새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그래픽의 내지가 무작위로 구성되어 있어요. 집에 있는 쓰다 만 공책들을 떠올려보세요. 노트 한 권을 다 쓴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사실 당시에는 “일정 금액이 넘는 노트를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라는 걱정이 있었어요. 고급 문구류가 대중화된 시점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고, 노트 한 권으로 고객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지점도 즐거웠어요. 이 작업을 통해 물건에 대한 한계치를 정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지금도 <Gap>을 작업할 때 느낌이 생생해요!

소재를 정할 때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1 : 평소 모아 두었던 책이나 물건에서 찾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들을 토대로 이야기하면서 나온 아이디어를 단어로 적어 두고 사용합니다. 각자 수집한 것을 보다 보면 저희의 공통된 취향에 새삼 놀라기도 해요!

하나의 작업물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0 : 간단히 말씀드리면, ‘아이디어 > 의견 조율 > 실크스크린 제판 및 인쇄 > 완성’의 과정을 거쳐요. 인물 드로잉은 각자 얼굴과 몸을 분담해 완성합니다. 오브제는 따로 그린 뒤, 디지털 작업으로 합치고 있고요. 이렇게 1차 작업이 끝나면 실크스크린과 바인딩, 재봉 등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산출물을 만들고 있어요.

 

1 : 가끔 공장 같기도 해요(하하). 한 명이 몸을 그리면 다음 사람이 얼굴을 그리는 식으로 릴레이 하듯 종이가 오고 가요. 작업 초창기에는 둘이 따로 그린 것을 모아두고 괜찮은 요소를 뜯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조금 비효율적이더라고요. 이제는 사전에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분업하니 순조로운 편이에요.

한 장씩 손으로 찍어내는 실크스크린 방식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죠. 쉽지 않은 작업일 텐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0 : 초창기에는 책이나 노트를 만들고 싶었지만, 인쇄물은 수량이나 비용 면에서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판화의 한 종류인 실크스크린은 손이 많이 가는 대신, 소량 제작이 가능해 위험부담이 적은 게 장점이에요. 색을 직접 만들거나 다양한 소재에 인쇄하며 여러 작업에 응용할 수 있는 점 또한 매력이죠.

 

1 : 그리고 생각보다 저희가 단순노동과 잘 맞더라고요(하하). ‘그리는 일’이 막히면 ‘만드는 일’을 하면서 리프레시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0 :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림과 스토리가 잘 맞아야 한다는 것? 내용을 잘 담을 수 있는 형식도 잘 어우러져야 하고요. 모든 일이 그렇듯, 늘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사소한 부분이라도 새롭게 시도하면서 변화를 주고 있어요.

작업할 때 언제 가장 즐거우신가요?

0 : 생각했던 이미지와 구조를 처음 실물로 마주할 때 즐거워요. 이렇게 만든 작업물을 누군가 공감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다만… 작업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 어려움을 느껴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작품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거든요.

1 : 난이도나 방식과 상관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작업이 있어요. 그런 작업의 경우, 상상했던 이미지가 그대로 실현되는 일이 많아서 모든 과정이 즐거워요.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어떻게 해도 다사다난했던 작업을 억지로 마무리해야 할 때 참 어렵습니다.

13년도부터 작업한 작품 36개를 모은 카탈로그를 봤어요. 약 9년이 흐른 지금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1 : 여전히 무표정한 아이들을 그리고 있고, 작업 방식도 거의 동일해서 아주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더 다양한 소재나 형식으로, 단편적 이미지에서 서사가 있는 작업으로 확장해왔다고 생각해요.

자매가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장단점이 확실할 것 같아요. ‘함께하길 잘했다’ 싶은 순간이 있나요?

0 : 조금 우습지만, 초면인 사람을 만났을 때 어색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하하).

1 : 사실… 그렇게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닌데, 마감이 임박했을 때마다 소중함을 느껴요. 식은땀 흐르는 순간에 고통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엄청 든든합니다!

반대로 서운하거나 힘들었던 일이 있다면요?

0 : 소소한 의견 충돌은 있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라, 대체로 없는 편입니다.

1 : 굳이 꼽자면 둘이 텐션이 다를 때요. 나는 지쳤는데 상대방은 의욕이 넘친다던가…?

일러스트레이터 0.1의 2022년 목표는 무엇인가요?

0 : 목표와 계획만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껴요. 더 늦어지면 정리하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1 : 그동안 해온 작업을 잘 정리하고 아카이빙하는 것이 작은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한마디씩 해주세요!

0 :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자!

1 : 쭉~ 함께 하자!

# Epilogue

차근히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추자매의 모습은 0.1의 그림 속 담담한 아이들과 꼭 닮아 있었다. 그들이 동료로서 함께 할 수 있는 비결은 오랜 시간 수집해온 취향과 대화가 아닐까. 0.1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0(영)과 1(일) 사이의 ‘점’은 두 사람을 연결하는 단단하고 깊은 지점임을.

INFO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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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  G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