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멈추는 일 없이 꾸준히 흐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는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말처럼,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1960년대 도시 사진가 한영수의 작품이 단서가 되어 줄 것이다. 21세기 도시를 조망하는 곳,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서울의 새로운 면면을 찾기 위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 글
- GEEP
- 사진
- 김도현
도시의 사진가, 한영수

시크한 포마드 머리에 카메라를 든 이 남자는 1세대 광고·패션 사진가 한영수다. 1933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과 사진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한국전쟁 참전 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 연구 단체 ‘신선회’에서 사진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한 1960년대, 광고 사진에 입문해 다양한 브랜드와 작업하며 한국 광고·패션의 선구자로 불렸다.
60년대 서울의 숨결, 거리의 미학
서울은 흥미롭고 다채로운 도시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역사가 지워지고,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흔적 위에 새로운 역사가 새겨지기까지 생생한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50~60년대는 거리 곳곳에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 한편 일상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했다. 최신 유행의 양장점과 젊은이들이 가득한 다방과 클럽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여름에는 삼삼오오 모여 한강에서 보트를 타고 수영을 하며 피서를 즐겼고, 겨울이 오면 꽁꽁 언 한강 위에서 썰매를 탔다. 사진가 한영수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전쟁 이후 도시를 회복해 나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했다.



한영수는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세련되고 모던한 앵글로 담았다. 20세기 중후반을 배경으로 활동했지만, 그의 사진에서 전후 시대의 우울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도시인으로서 수평적인 시선으로 도시의 풍경을 담았을 뿐이다. 길거리의 여인, 한강 전경 등 일상을 재치 있고 해학 넘치게 표현했다. 특히 과감한 여백과 크롭이 돋보이는데,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 너머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될 것이다. 1978년, 그는 한 디자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진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사진 자체가 현상된 결과이고, 그 가시적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기술적 처리를 연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의미가 더 빨리 마음을 울린다는 것입니다.” 한영수는 사진이 가진 기능과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자신이 본 도시를 카메라 프레임 안팎의 완전히 다른 세계로 창조해냈다.
21세기 서울에서 바라보는 20세기 도시

올해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진행되는 서울스카이의 기획전시 <시간, 하늘에 그리다>는 1960년대 생동감 넘치는 한국 사회를 포착한 한영수의 작품 70여 점을 미디어아트와 체험존 등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관람객의 전시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입구부터 전망대까지 모든 공간을 활용해 인화 전시와 미디어 전시 등으로 다채롭게 꾸민 점이 인상적이다. 관람객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60년대를 거친 세대라면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릴 기회가 될 것이다. 마치 드라마를 보듯 가족 혹은 친구들과 공감대를 찾으면서 즐기는 것이 관람 포인트다.






전시는 전망대에 오르기 전 지하부터 시작된다. 가장 먼저 과거 서울 시민들의 모습과 다양한 오브제를 미디어 전시로 만날 수 있으며, 생동감 넘치는 구성이 마치 그 시대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6개 테마로 구성된 메인 갤러리에서는 60년대 사람들과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 미디어 터널을 거쳐 도시의 풍경을 담은 ‘우리가 모르는 도시’,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꿈결 같은 시절’, 트렌디한 모습의 ‘힙한 거리 명동’ 등 당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과감한 시선과 앵글을 통해 익숙하지만 낯선 서울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가로등 아래에서 즐겨 했던 그림자놀이를 삼원색 조명으로 재현한 공간도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117층 전망대에서도 과거 여행은 계속된다. 전망대에 들어서기 전 대형 스크린에서 한영수 작가에 대한 스토리가 상영되며 전시에 깊이를 더한다. 짧은 영상이 끝나면 스크린이 열리고 서울의 전경이 펼쳐지는데, 마치 시간 여행을 마친 듯 강렬함을 선사하며 감탄을 자아낸다. 서울스카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 바닥 전망대 ‘스카이데크’에는 초대형 프린팅 작품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색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120층에 위치한 야외 테라스는 창 전체에 컬러 필름을 래핑해 서울을 색다른 모양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아날로그 흑백사진에 디지털 미디어를 접목해 표현의 확장을 보여주는 신선한 도전이다. 하나의 도시, 두 개의 시간을 나타내는 여러 장치를 통해 관람객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 흐름에 맞춰 걷다 보면, 역사적 고통의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과거 우리’의 모습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찾아가려는 ‘현재 우리’가 꽤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한영수 작가의 작품은 국내외 미술관 및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뉴욕국제사진센터(ICP), LA카운티미술관(LACMA) 등에서 다양한 주제로 만날 수 있다.

INFO
서울스카이 : 미디어 체험전 <시간, 하늘에 그리다>
전시기간
2021.09.01 ~ 2022.02.06
운영
일-목 10:00~22:00, 금-토·공휴일 10:00~23:00
주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테월드타워 117~123층
문의
1661-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