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업계에는 ‘신의 커피’라는 말이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상징과도 같은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전설적인 게이샤 커피를 맛보고 그 맛이 너무 황홀해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는 후문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여기서 파생된 ‘갓 샷(God Shot)’이라는 단어가 바리스타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쓰이고 있다. 갓 샷은 말 그대로 커피업계에서 이야기하는 최상의 커피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커피다. 재배에서 수확, 가공, 로스팅, 추출에 이르는 커피체인(coffee chain)의 모든 변수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맛볼 수 있는 궁극의 커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절정의 커피 맛보다, 뜻밖의 순간 찾아온 짜릿하고 환상적인 커피 한 잔이 잊지 못할 갓 샷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법. 바쁜 일상 속 그 어떤 휴식보다 큰 위안과 기쁨이 되는 갓 샷에 주목해보자.

로컬 기획자 최정원

– 브라질 필터 커피 

(썸네일)기룬 (1)

평소 커피 습관

보통은 일하고 있는 카페(@apartment.kiroon)의 에스프레소와 필터 커피 세팅을 잡고 나면 매일 아침 하루치 커피 섭취량이 다 채워지는 느낌이다. 그날 손님들에게 소개할 커피를 한두 모금 마시고 나면 대개는 ‘오늘 커피 맛이 좋네! 그렇지만 이제 그만…’이라고 마음 속으로 되뇌곤 한다. 출근 전 파이팅이 필요한 날이면 상수동에 위치한 듁스커피(@dukes_coffee_korea) 쇼룸에 들러 싱글 오리진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 간다. 주말에는 생활권을 벗어나 다른 동네의 특색 있는 카페를 둘러 보는 편인데, 꼭 특별한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라기보다 가보지 않은 카페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곧은_매장 사진

선호하는 커피 스타일

꽃향기가 더해진 과일 차 같은 느낌의 에티오피아 필터 커피와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의 편안한 카페를 좋아한다. 커피가 입맛에 맞지 않거나 매장 컨디션이 다소 열악하더라도 친절한 바리스타가 정성껏 내려준 커피는 뭐든 최고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매일 바에 서 보니 현실적으로 내가 원하는 완벽한 모습만 손님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른 카페에 갔을 때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속단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좋은 커피를 알아보는 방법은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의 친절함과 진정성이 유일한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갓 샷

새내기 바리스타로 근무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처음으로 제대로 내려 마신 브라질 필터 커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마철에 장대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매장이 한가한 틈을 타 선임 바리스타와 추출 레시피도 잡아볼 겸 브루잉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브라질 산타이네스 농장의 원두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엥? 커피에서 이런 땅콩향이 난다고?’라며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내 손으로 내린 필터 커피에서 풍부한 향미를 느껴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커피 공부도 흥미를 갖고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디자이너 고재현

– 볼리비아 싱글 오리진 라떼

베르크 (2)_대비 살짝 낮추기

평소 커피 습관

커피는 하루에 기본 한 잔, 많게는 두세 잔 정도 마신다. 그 이상은 카페인 부작용 때문에 마음 편히 마시기 어렵다. 빠르고 간편하게 마시고 싶을 땐 스타벅스를 많이 이용하지만, 맛있는 커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즐기는 편.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카페들이 워낙 많아져서 하나씩 찾아다니는 게 일종의 취미가 됐지만 아무리 공간이 좋아도 최소한의 커피 맛도 지켜지지 않는 곳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최근에는 회사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생겨 직접 구매한 원두로 내려 마시는 횟수가 잦아졌다.

선호하는 커피 스타일

평소 필터 커피보다는 원두의 영혼까지 뽑아낸 것 같은 진한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를 선호하고, 특히 우유가 들어간 라떼를 좋아한다. 커피 맛을 잘 몰랐을 땐 주로 고소한 맛을 기준으로 커피를 선택했지만, 커피의 산미와 아로마를 알고 난 후로 다양한 플레이버를 탐미할 수 있는, 미디엄 라이트 계열로 로스팅된 구조감이 좋은 커피를 자주 찾게 됐다.

베르크 (1)

기억에 남는 갓 샷

작년 여름 1박으로 짧게 부산 여행을 갔다가 베르크(@werk.roasters)라는 카페에서 볼리비아 원두로 만든 라떼를 마셨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줄이 밖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손님 한 명 한 명 일관되게 원두를 설명하고 추천해 주는 바리스타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오랜 기다림을 묵묵히 참을 수 있었던 건 이런 바리스타의 환대, 즉 ‘호스피탈리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라떼를 볼리비아 원두로 마시면 내추럴 와인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주문했는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바리스타의 말대로 내추럴 와인처럼 강렬하고 복합적인 베리향이 느껴지는 게 커피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 후로 볼리비아 원두를 맛볼 기회가 없어 아쉽던 차에 몇 달 전 망원동 카페 딥블루레이크(@deepbluelakecoffee)에서 비슷한 커피를 만나 무척이나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콘텐츠 PD 김다솔

– 치앙마이 로컬 커피

아카아마 (2)

평소 커피 습관

커피는 하루에 한두 잔 정도 마신다. 핸드밀로 곱게 간 원두를 비알레띠 뉴브리카 모카포트로 내려 고소한 라떼로 마시는 걸 좋아하고, 여름이면 라이트 로스팅한 원두로 만든 아이스커피를 즐겨 마신다. 집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먹고 싶어 캡슐커피머신, 에어로프레스 등 다양한 장비를 야금야금 모으고 있는데, 그중 최고는 단연 모카포트! 조금 귀찮긴 해도 크레마가 살아있는 커피를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어 최고의 추출도구라고 생각한다.

선호하는 커피 스타일

커피가 좋아서 홍대에 살 만큼 산책 겸 동네카페를 부지런히 다니는 편. 요즘같이 더운 날엔 아이스라떼를 한 잔 들고 동네 한바퀴를 슬슬 걷는데, 그럴 때 꼭 들리는 곳이 리이슈커피(@reissue.coffee). 바리스타도 친절하고 특히 라떼가 고소하면서 달콤한 게 정말 맛있다! 평소 진한 에스프레소 계열의 커피를 좋아해서 리이슈 다크블렌드를 구매해 집에서 라떼로 만들어 마시곤 한다. 가끔 평일 연차를 내고 매뉴팩트커피(@manufactcoffee)에서 한가로운 오전 시간을 만끽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커피그래피티(@coffeegraffiti)의 게이샤 커피 빙수나 에스프레소 콘파냐 등 특별한 커피를 맛보기도 한다. 산책 중 단 커피가 생각날 땐 테일러커피(@tailor_coffee)의 코코프레도를 한 잔 쭉 들이켜면 달콤한 코코넛 밀크와 부드러운 에스프레소 크림의 조화로운 맛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바트커피

기억에 남는 갓 샷

요즘처럼 바쁜 일과에 쫓겨 휴식이 그리워지면 첫 직장을 그만두고 떠난 치앙마이에서 맛본 커피들이 유독 생각난다. 보통 여행을 가면 다양한 카페를 가보는 편인데, 치앙마이는 작은 도시다 보니 걷거나 트럭을 개조해 만든 썽태우를 타고 곳곳에 숨은 아기자기한 로컬 카페들을 많이 둘러볼 수 있었다. 그중 올드타운에 위치한 아카아마커피(@akhaamacoffee)를 가장 자주 갔는데, 아카족이 재배한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한다는 의미도 있고, 2~3천 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에스프레소부터 필터 커피와 커피 젤리까지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여행 중 더위를 피해 우연히 발견한 커피 바 바트도 인상적이었다. 낯선 골목에 자리한 작은 카페인 이곳은 바리스타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고, 오밀조밀하게 적힌 낙서들 틈에서 한글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진하고 고소한 플랫화이트도 매력적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