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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뜨개로 엮은 사라즈문의 크리스마스

실과 바늘로 세상 유일의 오너먼트를 만드는 안신영 작가 2023.11.22

양모와 패브릭을 사용해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만드는 안신영 작가(@sarahsmoon_official).
도안 없이 시작되는 그의 작업은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형태를 잡아간다. 덕분에 그의 모든 작업은 이 세상 단 하나의 것. 모양이 제각각인 컵 받침과 코티지, 오브제와 조명, 이 모든 작업에 공통점이 있다면 언제나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특유의 따스함이 묻어 있다는 것. 안신영 작가는 몇 해째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만드는 작업도 이어오고 있다. 어쩌면 이는 그녀의 시선만큼이나 따뜻한 온도를 지닌 시즌이 바로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겨울 냄새가 그윽하게 불어오기 시작한 어느 오후,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작업이 한창인 그의 작업 공간을 찾았다.

GEEP

 

 

 

Q 사라즈문의 시작이 궁금해요. 아이에게 하나뿐인 아이템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창업의 시작이셨다고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 필요한 물건들과 아이의 방을 준비하면서 문득 ‘내가 직접 다 만들고 싶다’는 다짐을 했던 날이 떠올라요. 물론, 미술을 전공했고 어릴 때부터 뜨개질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니 아이 용품도 직접 만들고 싶다는 다짐이 아주 뜬금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다짐에는 약간의 외부적 요인도 있었죠. 13년 전인 당시엔 지금처럼 육아용품이나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것이 다양하지 않았어요. 특히 아이 침대 위에 걸어주는 모빌의 경우 딱 2가지 선택지가 있었거든요. 국민 모빌 또는 비싼 수입 모빌이요. 핸드메이드 키트로 나온 모빌도 있었지만, 대개 내구성이 좋지 않은 펠트 소재인 데다 뻔한 모양과 색감의 모빌들이 주를 이뤘죠. 그냥 내가 새로운 모빌을 만들어 주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Q 그렇게 탄생한 게 ‘구름 모빌’이죠? 

 

 

맞아요. 도안 없이 창작한 최초의 작업이었어요. 복잡한 작업도 모양도 아니었어요. 뜨개 고수들이 보기에는 도안 없이 금방 만들 수 있는 모양이지만, 당시 코바늘 초보였던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고 또 큰 의미의 작업이었어요. 

 

 

 

 

 


Q ‘구름 모빌’을 만들고 사라즈문을 론칭하게 된 과정도 궁금해요. 

 

 

뜨개질로 하나하나 만든 물방울을 동대문에서 구해 온 원단으로 만든 구름에 연결하고, 어떤 식으로 중심을 잡아 설치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렇게 완성한 모빌을 아이의 침대 위에 걸어두고 바라보며 뿌듯함에 마음이 벅차올랐던 순간은 잊지 못할 거예요. 구름 모빌을 만드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그 뒤로도 계속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구입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2014년에 사라즈문을 론칭하게 됐어요.

 

 

Q 아이가 작업의 중심축이 되었다는 지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아이의 어떤 면들이 작가님의 작업에 영감을 주었나요?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과 그에 따른 감정들이 저에게 영향을 주곤 했어요. 예쁜 꽃이 시드는 것을 보며 너무 슬퍼하는 아이를 위해 시들지 않는 꽃을 만들어서 주기도 했죠. 특히 아이가 대여섯 살 무렵부턴 모든 대화의 순간이 작업의 목적이자 영감이 되었어요. 당시 아이와 함께 빗방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엄마, 빗방울은 친구를 만들러 땅으로 오는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레이니의 모험’ 시리즈 모빌은 그렇게 탄생했어요. 아이가 제겐 뮤즈 그 자체였던 거죠. 실제로 작업의 방향에 혼란이 올 땐 아이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러면 아이가 단번에 어떤 것이 낫다고 말해 주곤 했죠.

 

 

Q 이제는 아이가 10대에 접어들었죠. 그때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저에게 영감보다는 방향을 잡아주는 존재가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즐거워하고 만들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만들지만, 늘 제 작업의 시작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그것을 잊지 않는 한, 무엇을 만들건 진심을 다하고 마음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Q 지금은 모빌뿐 아니라 조명, 오브제 등 그 범위도 다양해졌어요. 어떤 영감을 통해 작업을 이어가시나요?

 

 

무언가를 영감으로 하여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기는 길지 않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 아이가 어릴 때는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이 날카롭게 생기곤 했었어요. 사라즈문을 시작한 지 4~5년 정도 되었을 때, 그러한 영감이나 욕구에 기대는 것의 한계를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그냥 늘 꾸준히 뭔가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만들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아도요. 재료에도 큰 영향을 받아요. 미리 재료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그걸 만지고 보면서 만들고 싶은 것을 떠올리게 되거든요.

 

 

Q 음, 경제적인 면에서는 효율적이지 못하겠는데요?

 

 

그렇기도 하죠(웃음). 그래도 재료가 저에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주는 순간이 소중해요. 영감이 고갈된 듯한 밤에도 어떻게든 작업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내 자신의 성실함을 연료 삼아 기대보다 더 오래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

 

 

 

 

 


Q 최근엔 어떤 작업에 주력하고 계시나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보니, 아무래도 관련 아이템에 대한 생각과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플랩 캡 모자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새 모빌 작업을 하고 있죠.

 

 

Q 작가님이 생각하기에 뜨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시간을 엮는다는 점이요. 비단 뜨개뿐 아니라 모든 손으로 만든 것들의 매력인 것 같아요. 나의 시간과 정성이 한 땀의 바느질 또는 뜨개라는 행위를 통해 세상에 탄생하게 되니까요. 이 점은 작업자는 물론 작업물을 받는 이에게도 큰 매력인 것 같아요. 한땀 한땀 바느질한 자국을 보며 ‘누군가 나를 위해 이런 정성을 들였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말씀해 주신 분도 계셨어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시간과 정성을 엮어서, 누군가를 귀하게 대접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코바늘 작업의 특징을 알려주세요.

 

 

대바늘은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작업이라면, 코바늘은 조각처럼 구조적이고 더 유연한 작업이에요. 조소를 전공한 저에게는 코바늘의 그 유연함이 큰 장점으로 다가와요. 특정 형태를 정해 두지 않고 계속해서 형태를 변형하고 덧댈 수 있는 작업의 융통성이 저에게는 중요하거든요. 

 

 

 

 

 


Q 작가님의 작품에선 늘 따뜻한 메시지들이 느껴져요. 실제로 다정한 단어들이 새겨져 있는 경우도 많고요.

 

 

세상은 늘 따뜻하지만은 않고, 어떠한 불행은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닥치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잖아요. 스스로의 마음조차도 컨트롤하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내 마음을 위로하는 장치, 순간, 장면만은 내가 통제하고 만들 수 있어요. 세상이 다정하지 않기에, 늘 다정함을 추구하고 애써 떠올리자는 마음으로 작업을 합니다. 

 

 

Q 작가님께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있다면요?

 

 

일곱 살 즈음이었나, 크리스마스 이브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침대에서 일어났어요. 거실에서 소리가 나 방문을 열어봤더니 부모님이 은빛 포장지에 싸인 커다란 선물을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조용히 놓아두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부모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요. 실망보다는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어요. 그래서 깨어난 걸 티 내지 않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던 밤이 떠올라요. 부모가 되고 보니 그때의 우리 부모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고된 삶을 버티는 중에도 크리스마스처럼 비실용적인 순간에 마음을 써 주신 것에 감사해요. 

 

 

 

 

 


Q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사라즈문이 떠올라요. 매년 럭키 참, 오너먼트 등을 선보이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크리스마스를 참 좋아해요. 매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것도 큰 즐거움이고요. 하지만 매해 다른 오너먼트가 유행하고, 그래서 이전 것을 버리고 쉽게 새로운 오너먼트를 사게 되는 사이클은 지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드는 기물 역시 해가 지나도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무엇보다 제 오너먼트를 매년 하나씩 구입해서 모으고 계신 분들을 위해 앞서 작업한 것들과의 조화를 늘 염두에 두면서 만들고 있어요.

 

 

Q 올해는 어떤 오너먼트 작업을 준비하고 계세요?

 

 

얼마 전에 무엇을 만들겠다는 목적 없이 해리스트위드 원단을 구입했는데, 톤다운된 원단의 패턴과 색감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점이 특히 좋아서, 그 색감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오너먼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에 봉봉백이라는, 꽃 모티프를 연결하면 가방이 되는 도안 작업을 했었는데 그것에 영감을 받아 꽃 모티프 모자도 만들고 오너먼트도 만들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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