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LLECTOR

편지 쓰는 사람의 책

‘글월’ 문주희 대표가 들려준 책과 물건 이야기 2023.10.16

모두가 SNS와 메신저로 소통하는 일상을 산다. 그토록 간편한 수단이 있음에도 우리는 때로 글을 쓴다.
편지란 적당한 펜과 종이, 말을 골라 손수 써내려가는 시간만큼의 질량이 진심에 더해지기를 바라는 낭만적 마음의 흔적이다.
이토록 낭만적인 편지가게, 글월에 들렀다. 이곳의 주인장이자 애서가인 문주희와 나눈 책과 물건이야기.

GEEP


 

 

 
 
 

 

 


글월은 5년 전 연희동에 문을 열었다. ‘언제나’ 쓰이지는 않더라도, 전할 마음이 있을 때면 떠오르는 상점이 되기를 바라며 편지와 관련한 기물과 서비스를 제안한다. 이 가게에는 엄선한 셀렉트 편지지부터 글월이 직접 디자인한 오리지널 편지지가 있다. 펜과 연필, 잉크와 페이퍼 마그넷, 조명처럼 쓰고 읽는 생활을 좋아하는 이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아이템도 판매한다. 시그니처 서비스인 ‘펜팔’은 특히 인기가 높다. 모르는 이와 한통의 편지를 교환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서비스는 글월이 우체부 역할을 맡아 글월의 고객들이 서로를 펜팔 삼는 계기를 마련한다.


 

 

 

 

 

글월만의 감각적 큐레이션과 이 브랜드가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고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편지 쓰기를 동시대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글월을 기획한 문주희 대표는 그 자신 역시 ‘쓰고 읽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소문난 애독가이기도 한 그는 매거진 에디터와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직업을 거쳐 가게를 열었고, 몇해 전 1인 출판사인 ‘봉투북스’까지 선보였다. 독립출판계 입소문 아이템으로 유명한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를 시작으로, 실존주의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장폴 사르트르’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책 《제2의 성》의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있다.

 

 

 

 
 
 

 

 

 


MINI INTERVIEW
 

 

Q 글월은 마니아층이 두터운 숍으로도 유명하죠?

 

단골들이 늘어나는 중이죠. 차분한 정서를 지닌 분들이 많은 듯 해요. 아무래도 편지는 다소 정적인 작업이니까요. 무엇이든 ‘공유’하고 ‘같이’하는 게 익숙한 요즘과 달리 편지는 공동 작업이 될 수 없잖아요. 혼자만의 일을 다룬다는 점에서 작가를 지망하거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글월을 많이 찾아 주시는 듯 해요.

 

Q 기존엔 다양한 편지 아이템을 큐레이션해 판매했는데, 요즘은 글월이 직접 디자인한 편지지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들었어요.

 

글월이 만든 편지지가 책상이나 집 안 어디에 두어도 자연스레 어울리고, 눈에 바로 띄지는 않는 물건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두께와 밀도에 신경 쓰되 디자인은 단순하게 하려는 편이에요. 노트를 만들 때는 펜이 종이에 닿아 ‘사각’이는 소리를 내는 사용감도 고려를 합니다.

 

 

 
 
 

 

 


Q 운영 중인 출판사 ‘봉투북스’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지금 저희가 판매하고 있는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가 시작이었죠. 이 책은 원래 가게에 입고된 도서였어요. 저자인 ‘남하’ 작가 자매가 1980~90년대 부모님이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모아 출간한 책이었죠.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위해 소량 제작한 책이다 보니, 이후 재인쇄를 할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직접 출판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내용이 워낙 좋았거든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곧 1만 부를 찍게 됐어요.

 

 

Q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의 어떤 면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나요?

 

 

두 사람의 편지가 오가는 내내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드러나는데요. 편지의 당사자인 아버님이 군에 계시며 당시 연인이었던 어머님에게 편지를 쓴 후 ‘기다림’에 관해 이렇게 쓴 적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널 만날 수 있을까.’ ‘과연 이 편지가 너에게 잘 전달될까’. 스마트폰과 전화가 익숙한 우리에겐 낯선 마음이죠. 나의 편지가 발송되는 순간부터 답변을 받기 전까지의 지난한 기다림을 견딘 당사자들은 굉장히 답답했을 텐데(웃음), 이걸 글로 봤을 때는 정말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읽히죠. 틈틈이 나오는 옛 말씨들도 정겹고요.

 

 

 

 


Q 애독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생 책을 몇 가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게 인생 책의 기준은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꺼내 보는 책’이라고 봐요. 그 기준에서 골라볼게요. 첫 번째는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입니다. 에세이집인데요. 대개 에세이라고 하면 사건을 나열하고, 그것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을 녹이는 방식으로 쓰게 되죠.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의 감정을 전달한 후에 사건을 넣어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에세이를 사건이 아닌 감정의 나열로 써보고자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그래서 자꾸만 한 번 더 꺼내 보고, 한 챕터씩 다시 읽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장 그르니에의 《섬》이에요. 해외여행 중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꾸 꺼내 보게 돼요. 왜 해외여행을 가면 스스로가 그 곳에서 이방인이라는 걸 매순간 인식하게 되잖아요. 사람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심지어 공기의 향도 다르죠. 그렇기 때문에 오는 일종의 자유로움이 있는 거고요. 이 책은 그런 식으로 해외에서의 경험을 굉장히 생생하게 전달해요. ‘낯설고도 매혹적인 이국’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을 아주 세밀하게 담아내죠. 마치 제가 외국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역시 그런 책이에요. 이 책은 자전적 소설 형식인데요. 여행을 통해 만났던 이들의 사소한 일상이 작가에게 굉장히 특별해 보이는 지점들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요. 여행을 가야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에 공감하며, 또 소설 속 주인공이 경험하는 무언가에 대한 미감도 충분히 느껴지거든요.

 

 

 

 


Q 인문학 도서들은 내용이 어려워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던데요. 대표님만의 독서법이 있나요?

 

저도 쉽지 않은 책들이 많아요(웃음). 조금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책을 끝내는 것보다 천천히 이해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요. 어떤 책은 3년 동안 읽기도 하고요. 그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책을 탐닉하면서 저에게 시간을 주는 편이죠. 

 

 

Q 대표님은 어떤 순간에 책을 찾게 되나요?

 

오롯이 편안해지는 순간에 찾게 돼요. 요즘은 특히 디지털 디톡스가 됐다고 느끼는 순간에 편안함을 느끼고, 그때 책을 좀 읽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음악, SNS, 유튜브 등이 다 소란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잠시 ‘멍 때리기’ 하면서 저를 조용한 환경에 두다 보면 자연히 책을 찾게 돼요. 

 

 

Q 책은 어디에서 고르나요?

 

대개는 웹 기반의 플랫폼이죠. 이틀에 한 번쯤 들어갈 정도로 도서 구매 플랫폼 아이쇼핑을 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눈에 들어오는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는데요. 지금은 140권 정도 돼요. 저한텐 뿌듯한 습관이에요. 약 10년 간의 제 관심사와 취향을 그 장바구니 안에서 볼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모아  놨다가 하나하나 구매하는 편이에요. 

 

 

Q 직접 서점에 가기도 하나요?

 

네, 가장 좋아하는 서점은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예요. 10년째 연초에 다이어리를 사러 가는 가장 큰 문구점이기도 하고, 그래서 동선도 익숙하니 자주 가게 돼요. 또 요즘처럼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 때, 거길 가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실체가 거기 있으니 일종의 안도감이 들어요. ‘나만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다행이다’ 하면서요. 

 

 

Q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한살 한살 나이가 들 수록 관심사와 사회적 관계가 좁아진다고 느껴요. 사람이라면 자연히 그런 것이지만, 저는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이니 같은 재료로는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의 다양성이 줄어들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자니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 대체제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은 다소 천천히 제게 창작의 양분을 줄 지 몰라도 충분히 정제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문주희 대표가 추천하는 독서 메이트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