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롯데콘서트홀에서 처음 개최된 클래식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이 돌아왔다. 매년 위대한 걸작을 남긴 작곡가를 선정하여 그들의 음악을 기리는 클래식 축제의 올해 주인공은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 ‘브람스’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탱고 음악의 거장 ‘피아졸라’다. 2년 연속 클래식 레볼루션의 음악감독을 맡은 독일 출신의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Christoph Poppen)은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찬 설렘과 기쁨으로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한층 더 풍성해진 클래식 레볼루션의 주요 소식을 그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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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EP
<GEEP>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음악협회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책임지는 크리스토프 포펜입니다. 2년 연속 클래식 레볼루션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게 되어 커다란 행복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무사히 첫 회 공연을 마치고, 두 번째 축제를 준비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공연을 즐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올해도 클래식 레볼루션이 개최되었다는 사실에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인 음악가들을 불러 모아 자가격리 기간까지 고려해가며 이렇게 큰 행사를 기획하기가 쉽지 않지만, 공연을 준비하며 음악과 아티스트들이 가진 저력이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영국의 ‘BBC프롬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 유럽은 유독 여름 클래식 축제가 많은데요, 클래식 레볼루션이 갖는 차별화는 무엇인가요?
유럽은 현재 많은 축제가 취소되거나 현지 규정에 맞춰 프로그램과 장소를 변경하는 식으로 공연이 진행되고 있어요. 그에 비해 지난해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은 코로나19 발생 이래 가장 힘든 시기였음에도 음악 애호가들에게 환상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데 큰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죠. 국제적으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큰 음악 축제를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전 세계를 통틀어 몇 안 되는 국가에서만 가능한 일이에요. 한국이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이 점이 클래식 레볼루션과 유럽의 음악 축제가 갖는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공연을 마치는 동시에 올해 계획을 세우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요, ‘브람스’와 ‘피아졸라’를 올해의 작곡가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올해가 피아졸라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것은 클래식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래서 축하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는데, 그의 음악만으로 행사를 다 채우기에는 곡 수가 조금 부족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큰 영감과 영향을 준 작곡가는 누구인지 생각하다 ‘브람스’를 떠올렸고, 피아졸라와 브람스를 대조하는 구성을 기획했습니다. 이번 축제는 어떤 의미에서 두 개의 대조되는 클래식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 수많은 한국 제자를 양성해 오셨다고 들었어요. 올해 ‘노부스 콰르텟’과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노부스 콰르텟과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에요. 앙상블이자 바이올린 4중주 연주단으로 함께 작업했죠. 그들을 처음 본 날 음악적 재능과 표현력에 깊이 감명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늘날 국제적 명성을 쌓기까지 그들의 음악이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매우 멋진 경험을 했어요. 브람스 체임버 뮤직 콘서트를 포함해 그들과 이번 프로그램에 함께 설 수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올해 준비한 12개의 프로그램 중 가장 기대되는 공연은 무엇인가요? 축제를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어떤 공연이든 저에겐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테니 모든 공연이 기대되지만, 굳이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공연입니다. 한국의 가장 실력 있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김동현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무대에 서기 때문이죠.
축제를 더욱 재밌게 즐기는 방법은 당연히 모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관객의 취향에 따라 편하게 즐겨 주세요. 피아졸라, 브람스, 관현악, 실내악 등 선호하는 공연을 폭넓게 고를 수 있답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브람스의 현악 4중주와 강렬한 두 개의 5중주, 그리고 초기에 작업한 현악 6중주까지 하루에 모두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어떤 공연을 고르더라도, 풍요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작년에는 베토벤 음악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면, 올해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먼 훗날 관객이 2021년 클래식 레볼루션을 떠올렸을 때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이 세상 어디든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가볍고 소소한 행복은 물론, 무겁고 심오한 고뇌 속에도요. 개인적으로 연습 중인 습관이 하나 있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매 순간 모든 사람과의 만남에서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식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감독님만의 비법인가요? 불안이 엄습하는 요즘 시기에 마음의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감독님만의 비법이 있다면 또 알려 주세요.
저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것이 결국 나를 더 강하게 성장시킨다는 믿음이 있고요.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클래식 레볼루션을 찾아올 수 없는 이들에게 집에서 들으면서 온전한 휴식을 느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추천한다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요함과 평온함이 필요하다면 모차르트를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힐리어드 앙상블(Hilliard Ensemble)과 바흐의 샤콘느(Ciaccona) 중 ‘죽음(Morimur)’을 녹음했을 때 많은 관객이 위로와 에너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해 준 기억이 나네요. 저에게도 잊지 못할 큰 감동을 안겼기에 이 음악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클래식 레볼루션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상임 지휘자로 있는 홍콩의 오케스트라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녹음 작업과 수업을 병행할 계획입니다. 예루살렘 페스티벌에도 초청받았고, 이스라엘 실내악단에서 수석 객원 지휘자 역할도 해야 하죠. 무엇보다 2022년 3월에 한국에 돌아와 통영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에 참가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여러분과 마주할 날을 가장 기대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