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이 더 맛있는 법

클래식 스콘

illust by 보니룸

음식에 진심인 한국인들은 특정 음식 하나가 유행하면 금세 화려한 K-푸드로 재탄생 시킨다. 이제는 어느 카페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스콘’도 그중 하나다. 초코칩이 가득 박힌 스콘, 유행에 유행을 더한 앙버터 스콘, 시판 과자까지 합세한 로투스 스콘 등 당장 떠올려봐도 그 종류가 끝이 없다. 스콘 전문점이라 하면 하루에도 열 가지 이상의 제품이 줄지어 나올 만큼 다양한 라인업으로 개성 있는 레시피가 가득하다. 

장담하건대 한국인의 메뉴 배리에이션 속도는 전 세계 그 누구도 쫓아올 수 없다. 맛있는 것에 맛있는 걸 더하다니!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맛보게 된다. 하지만 이 맛 저 맛 경험하고 나면 어느새 다시 본연의 맛을 찾는다. 다양한 부재료에 가려졌던 기본 맛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유행이 돌고 돌아 클래식함을 찾는 것처럼.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음식에 붙이면 화려한 장식을 뺀 기본 모습이지 않을까. 나에게 클래식 스콘은 어느 빵에나 들어가는 재료인 밀가루, 버터, 우유, 소금, 설탕만으로 맛있게 만드는 디저트다. 시골에서 쪄먹는 감자처럼 삼삼한 느낌, 그 단순함이 바로 꾸밈없는 클래식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자극적인 끌림은 없지만 질리지 않아 계속 생각나는 맛, 버터 향을 잔뜩 내뿜으며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스콘은 아는 맛이기에 더 지나칠 수 없다. 기본은 이렇게나 강력한 것이다. 

그냥 먹어도 충분히 맛있지만, 왠지 그냥 먹긴 아쉽다. 그래도 첫입은 예의를 갖춰 본연의 맛을 음미한다. 그다음 스콘을 반으로 가른다. 아직 따끈따끈한 부드러운 속살이 나오면 식기 전에 얼른 차가운 버터를 올려 온기에 녹아들게 하자. 차가운 버터를 따뜻한 스콘에 올리면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다. 슬슬 버터가 물릴 즈음엔 달달한 딸기잼으로 바꿔 보자. 2% 아쉬웠던 단맛이 딱 만족할 만큼 충족된다. 이 조합,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바로 내 인생 첫 스콘이었던 흰 콧수염 할아버지의 비스킷이다. 역시… 아는 맛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심플한 레시피로 전하는 확실한 행복

티라미수

illust by 보니룸

이름도 낯선 티라미수를 처음 맛본 건 중학생 때였다. TV에 나온 새로운 음식이라면 꼭 먹어봐야 직성이 풀렸던 나는 레시피를 찾아 티라미수를 직접 만들었다. 그게 나의 첫 티라미수다. 그 당시 우리에게 티라미수는 낯선 존재였지만, 사실 티라미수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는 어느 카페나 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국민 디저트다.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만큼 ‘정통’, ‘클래식’ 이란 수식어가 찰떡같이 붙는다. 음식에 클래식이란 단어가 붙으면 고급 레스토랑이 연상되면서 왠지 어렵고 격식 있게 느껴지지만, 티라미수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마치 엄마가 손에 익은 반찬을 뚝딱 만들어 내는 것처럼 눈감고도 만들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단하다는 걸. 손맛 좋은 이웃집 이모 레시피가 이집 저집 소문나듯,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티라미수도 어느새 자연스레 우리의 국민 디저트가 되었다. 

진한 마스카포네 치즈와 커스터드를 섞은 부드러운 크림, 에스프레소에 푹 적신 레이디핑거 쿠키. 두 가지면 충분하다. 크림과 레이디핑거 쿠키를 층층이 쌓는데 1단, 2단 층수는 상관없다. 원하는 만큼 쌓으면 그만. 티라미수 레시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료도 계량도 아닌 먹는 사람 마음이다. 겹겹이 쌓았다면 냉장고에서 몇 시간 굳혀야 하는데 이 과정이 가장 어렵다. 당장이라도 맛보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 하니까. 하지만 인생은 고진감래! 충분히 기다린 자에게 달콤한 보상이 따르는 법이다. 크림이 아이스크림처럼 차가워지고 레이디핑거 쿠키가 에스프레소와 크림을 한껏 머금으면 손꼽아 기다리던 보상의 시간이 온다. 

갓 꺼낸 차가운 티라미수를 큰 수저로 큼직하게 떠서 투박하게 접시 위에 덜어내자. 우리에게 익숙한 티라미수 모양은 각진 네모, 둥근 컵에 담은 모양, 조각 케익 등 정갈한 모양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보통 스푼으로 크게 떠서 서브한다. 무심한 듯한 이 방식이 왠지 더 매력적이다. 티라미수를 맛있게 만드는 나만의 팁이 있다면, 달콤 쌉싸름한 코코아 파우더를 채로 곱게 쳐서 원하는 만큼 먹기 전에 뿌리는 것이다. 그래야 코코아 가루가 뭉쳐지지 않아 먹을 때 텁텁하지 않다. 자 이제 드디어 기다리던 티라미수를 만끽할 시간. 

입안에 크림을 가득 머금으면 한여름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고 살짝 이불만 덮은 듯 시원함과 포근함이 전해진다. 사치스럽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의 순간. 게다가 달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와 코코아 파우더까지 더해지니… 정말이지 이 맛은 1인 1접시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