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캐럴은 이제 그만. 인디 밴드 마니아 ‘랏밴뮤’가 추천하는 ‘인디 캐럴’을 들으며 독특하고 재미있는 크리스마스를 보내 보자.
- 글
- 조재우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만 자신이 없으시다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람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취향입니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사람도 예리하게 갈고 닦은 멋진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순 없거든요. 이번 겨울, 친구들과 함께하는 연말 모임에서 관심 있는 사람에게 어필하고 싶은 분들은 제가 추천해드리는 플레이리스트에 주목해주세요. 희망과 절망의 크리스마스 서사가 골고루 녹아 있는 인디 음악씬의 캐럴을 선곡하는 순간, 여러분은 한층 감도 높은 매력의 소유자가 될 겁니다!
희망편
9와 숫자들
<산타클로스>
9와 숫자들은 보컬 송재경과 기타의 유정목, 베이스의 꿀버섯, 드럼의 보이디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입니다. 경쾌한 밴드 사운드에 어딘가 서글픈 보컬이 귀에 밟히는 노래인 <산타클로스>는 의외로 만물이 태동하는 5월에 발매된 곡인데요.
어른들의 무지와 조롱 저는 굴하지 않았어요
착한 일도 많이 했구요 단 한 방울도 울지 않았어
헛된 기대라도 좋아요 오시지 않아도 괜찮아
생각만으로 짜릿해요 이미 우린 함께이니까
시와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
2007년 EP앨범 [시와]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시와는 따뜻한 시선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뮤지션입니다. 살다 보면 연인도 없고, 가족들은 멀리 살고, 마땅히 만날 사람도 없는 그런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도 있잖아요? 시와의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는 그런 분들을 위한 곡입니다.
사람들 넘치는 그런 곳엔 가기 싫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그런 인파에
거기 말고 따뜻한 우리 집에서
그냥 나와 못다 한 얘기나 할까
한겨울에 이 곡을 들을 때면, 따뜻하지만 애처로운 멜로디와 떨리는 고백 같은 노랫말이 만나 뭉근하게 끓여진 차 한잔을 마시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딱히 계획이 없다면 오랫동안 연락이 뜸해 조금은 소원해진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 하냐고,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 따뜻한 우리 집에서 못다 한 이야기나 하자면서 말이죠.
바버렛츠
<론썸 크리스마스>
바버렛츠는 국내에선 조금은 생소한 ‘바버 숍 아카펠라’ 그룹인데요. 바버 숍 아카펠라는 20세기 초 미국 이발소에서 흑인 남성 4중창단이 노래하던 것에서 유래한 장르라고 합니다. 바버렛츠는 이때로부터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복고풍의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사실 세계 4대 페스티벌 중 하나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 참여하고, 2016년엔 북미 투어를 다녀오기도 하는 등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팀입니다.
친구들 하나둘 고향에 내려가
그리운 가족들 만나러 가지만
한두 해도 아닌데 오늘따라 서러워
집에 가고 싶어
외로운 건 좀처럼 익숙하지 않네
그곳엔 지금 눈이 온다며
보고 싶은 얼굴 먹고 싶은 음식 다 그립다
타국 생활에 적응한 척 살아가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외로움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로하는 곡, <론썸 크리스마스>입니다.
절망편
신승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슨 생각이 나나요>
독립 영화감독이면서 포크 뮤지션이기도 한 싱어송라이터 신승은은 본인만의 순수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온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입니다. 얼핏 들으면 대충 치는 것 같은 통기타 소리와 모든 의욕을 잃은 듯한 목소리는 신승은만의 자조적인 가사와 만날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요.
크리스마스 하면 무슨 생각이 나나요
마약 중독자가 되어버린 백인 소년
(중략)
캐럴이 나오는 잘 꾸민 백화점과
따라 하려다 어설퍼진 아파트
인터넷으로 보는 명동의 사진
(중략)
크리스마스 하면 무슨 생각이 나나요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그때쯤 너의 일이 한창 바쁠 때니
걱정되는 건 그것 하나뿐
그날 하루쯤 네가 쉬었으면
크리스마스는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열기도 하고, 연인과 로맨틱한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크리스마스가 아무 의미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즐거운 휴일을 위해 쉴 시간도 없이 바쁜 사람들도 있죠. 올 성탄절에는 낮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했던 예수처럼 우리 주변에 크리스마스를 반길 수 없는 이웃들을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이이언 covered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연세대학교 졸업, 멘사 회원 등으로 알려진 인디 밴드계 대표 브레인 이이언은 솔로 활동과 함께 밴드 못과 나이트오프 활동을 겸하는 뮤지션입니다. 또한 ‘우울한 전자 음악의 장인’으로도 알려져 있죠. 그런 그가 부른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우울감이 돋보이는데요.
I don’t want a lot for Christmas
There’s just one thing I need
(중략)
Make my wish come true…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원곡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은 이에게 부르는 달콤한 사랑 고백이었다면, 이이언 버전의 곡은 견우와 직녀처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비극적인 노래로 들리지요. 깊은 우울감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으신 0.1%의 특이 취향인 분들께 추천합니다.
김태춘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
김태춘은 부산의 김일두, 씨 없는 수박 김대중과 함께 ‘삼김시대’로 알려진 컨트리 뮤지션인데요. 2013년 [가축병원블루스]라는 앨범으로 데뷔해 가수 이효리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죠. 특유의 염세적이고 어두우면서도 재치 있는 노랫말로 마니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밤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
15번 국도 위에 취한 루돌프와 함께
마주 오는 화물차에 깔려버렸으니
술 취한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
오늘 밤 예수는 너의 헛된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거야
싸구려 가방에 성경과 CCM을 넣고
꼬인 혀를 감고 출장을 떠나버렸으니
지금까지 인디 뮤지션들이 만든 가지각색의 캐럴을 추천해드리는 인디 캐럴, 희망 편vs절망 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인디 음악과 캐럴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요. 이번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이렇게 좋은인디 캐럴을 만나고 소개해드릴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혹시 제 글을 읽고 인디 음악에 관심에 생기셨다면 <랏밴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보는 건 어떨까요? <랏밴뮤>는 인디 뮤지션들이 매일 밤 8시부터 직접 라디오를 진행하며 청취자분들과 소통하는 곳이랍니다!
그럼 올 크리스마스, 관심 있는 그 사람이 있는홈 파티에서 차별화된 음악 취향을 유감없이 선보이실 수 있길 바라며
이만,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