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호랑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라는 첫 마디로 할머니의 전래동화 보따리가 풀어지곤 했다. 할머니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는 단골 주연이었다. 떡장수 어머니를 잡아먹고 남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해님달님 속 무자비한 호랑이, 곶감을 자신보다 무서운 존재로 오해해서 도망치는 멍청한 호랑이가 있는가 하면 효심이 지극한 인간을 도와주고 은혜를 잊지 않은 착한 호랑이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총 635회 호랑이가 등장하는데, 산의 왕을 뜻하는산군(山君)’,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를 의미하는호환(虎患)’ 등 호랑이에서 파생된 다양한 단어만 생각해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호랑이와 밀접한 생활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다

호랑이는 부패한 권력자를 대변하는 어리석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정초가 되면 잡귀와 액운을 막기 위해 대문에 그림을 붙일 만큼 의지의 대상이자 영험함의 상징이었다. 두려움과 친근함, 어리석음과 신묘함을 두루 갖춘 이토록 복합적인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일제의 무자비한 사냥으로 조선 팔도를 누비던 호랑이는 자취를 감췄지만, 여전히 호랑이는 우리 마음속 가까이에 있다. 세계적인 축제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활약한 88올림픽의호돌이와 평창 동계 올림픽의수호랑만 떠올려도 그렇다. 민족성을 드러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호랑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2021년 호랑이와 한국인의 관계성에 주목하여 잠들어 있던 조선의 호랑이를 깨워낸 브랜드가 있다. 한국의 스트리트 무드에 자유로움과 자기다움을 담은 의류 브랜드조선 호랑이.

호담국셋업 (6)

전통과 고전 문화를 모티브로 활용한 21세기 개성 표현법

‘조선 호랑이’는 ‘입는 이’의 주체성을 찾는 데 영감이 될 수 있는 스타일과 아이템을 제안하는 브랜드다. 조선 호랑이의 이시영 디렉터는 여성복에 초점이 맞춰진 생활 한복 시장에서 한복을 경험하고 싶은 남성과 젠더리스 디자인을 선호하는 이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타깃을 확장했다. 성별과 체형,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가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뒷받침되어 고전 문화를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동안 브랜드 정체성은 다듬어졌다.
한국의 문화와 미감, 철학을 살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임을 알리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맹호 기상도’와 ‘일월오봉도’가 활용됐다. 이 디렉터는 도포 두루마기 형식의 한복 트렌치코트에 일월오봉도를 자수로 새겼다. ‘당당한 나다움’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 뒤에 펼쳐 놓고 권위와 신성함을 나타냈던 ‘일월오봉도’는 실내외 막론하고 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는 배경이었다고 해요. 조선의 왕처럼 우리도 당당하고 위엄 있게 자신을 드러내자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조선의 임금이 시무복으로 입던 ‘곤룡포’와 ‘일월오봉도’를 모티프로 제작한 ‘일월오봉도 트렌치 코트’(좌), 조선 호랑이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출사표가 된 조선 호랑이 자켓’(우)은 한국인의 기상을 가장 뚜렷하게 전하는 ‘맹호 기상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일상에서 축적된 여행의 경험이 독특한 그래픽으로

2021년 첫 번째 컬렉션 ‘풍류’의 ‘선암사 호랑이’ 시리즈는 이 디렉터가 여행에서 얻은 영감의 순간이 집약돼 있다. 비 오는 날 순천 선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주한 차분하고 여유로운 풍경과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본 아름다운 하늘, 땅의 색감이 조화로운 그래픽을 완성했다. 신비로운 은하수 물길을 따라 거니는 호랑이 모습은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며 여유를 즐기는 이 디렉터의 모습이 투영된 듯하다.
2021년 첫 번째 컬렉션 ‘풍류’의 ‘선암사 호랑이’ 시리즈는 이 디렉터가 여행에서 얻은 영감의 순간이 집약돼 있다. 비 오는 날 순천 선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주한 차분하고 여유로운 풍경과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본 아름다운 하늘, 땅의 색감이 조화로운 그래픽을 완성했다. 신비로운 은하수 물길을 따라 거니는 호랑이 모습은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며 여유를 즐기는 이 디렉터의 모습이 투영된 듯하다.
선암사호랑이베이지
선암사호랑이 우유니

선암사 호랑이 시리즈 – 주요 모티브로 활용한 선암사에 있는 승선교는 중생과 부처를 이어주는 다리로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가는 중생을 보호하고 수용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승선교 주변에 흐르는 은하수 물길은 우유니 소금 사막의 황홀한 색감을 표현했다.

선암사 호랑이 셔츠는 MBC 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의 MC 유재석이 입고 나와 큰 주목받은 바 있다.
선암사 호랑이 셔츠는 MBC 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의 MC 유재석이 입고 나와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고전 문화와 역사, 트렌디함을 입다

여행과 고전 문화에서 콘셉트의 실마리를 찾는 ‘조선 호랑이’가 주목하는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이시영 디렉터는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유난히 독립운동 역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질 만큼 애정이 깊은 사람이에요.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신화’ 못지않게 대단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잖아요. 지금처럼 신소재 기술이 발전한 상태에서 독립운동가분들이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활동하셨으면 어땠을까? 가벼우면서도 체온 조절에 뛰어나고 내구성은 물론, 물건 숨기기에도 용이한 그런 옷이었다면 활동하시기에 더 편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계속합니다. 아마 이런 상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컬렉션이 나올 것 같아요. 물론, 다양한 모습의 호랑이도 계속해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호랑이 발톱이나 애호(艾虎 쑥·대쪽·헝겊 따위로 만든 호랑이의 형상으로 단옷날에 애호를 만들어 머리에 얹으면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같은 작은 친구들을 활용해서요. 더 멋지고 당당한 호랑이가 나올 거로 생각합니다.”
‘조선 호랑이’는 자칫 낡고 고루하다 여길 수 있는 전통과 지난 역사에서 ‘멋’을 찾는다. 이들이 발굴해낸 가치와 철학 속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한국인의 정체성과 얼이 살아 있다. 2021년 다시금 부활한 ‘호랑이’의 포효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당당한 나다움’이란 가치관을 전하려는 이들의 바람이 담겨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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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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