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팔찌(또는 소원팔찌)가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 작은 존재가 사람을 꽤 설레게 한 이유는 팔찌를 차고 다니다 자연스레 끊어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국내에 번진 실팔찌 유행의 시작에는 ‘최창남 메이드’가 있다. 색깔에 의미를 담아 고객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팔찌를 엮는 최창남 디자이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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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EP

안녕하세요. <GEEP>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핸드메이드 전문 디자인 회사 ‘최창남 메이드(이하 ccn made)’의 실장 최창남입니다. 한국적인 색감과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반가워요!
매장 앞에 Since 1993년이라고 적혀 있네요! 내년이면 30주년이 되는데, 수공예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업 초기, 당시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어요. 돈을 꼭 벌어야 했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무언가 만들 방법을 강구해야 했죠. 그때 한복을 만드시던 어머니가 주신 빨간 실크실과 머리 땋던 경험이 떠올라 실팔찌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이대, 압구정 같은 서울의 중심가와 대구 동성로, 부산 해운대 등에서 2년 정도 떠돌았죠. 거리 상인들의 텃세와 단속으로 매일 쫓기고 울면서도 악착같이 버티며 장사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길에서 저를 받아주더라고요. 이후 압구정 로데오에 작은 지하 공방을 냈는데, 압구정을 오가는 스타일리스트 사이에 저희 제품이 입소문 나면서 서태지, 젝스키스 등 많은 연예인이 착용하기 시작했어요. 점차 단골이 늘어나고 가게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갈 무렵 위기가 찾아왔죠.

어떤 위기였나요?
당시 양산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상황에서 늘 재고가 부족했고, 저렴한 공장제 카피 상품까지 쏟아져 나오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거의 망하기 직전,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조용히 다시 실을 건네주셨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요. 그 따뜻한 응원에 힘을 얻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가 성장한 후에도 꾸준히 100% 핸드메이드를 고집하고 계시죠. 제작부터 퀄리티 체크까지 수작업이 쉽지 않을 텐데요, 핸드메이드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한 땀 한 땀 만들다 보면 그 제품에는 사람의 온기가 남고, 고객이 그 힘을 받는다고 믿어요. 그게 바로 대체 불가한 핸드메이드의 매력 아닐까요. 저 또한 그 과정이 주는 매력에 빠졌고, 지금도 일과 뜨겁게 연애하는 기분입니다.
처음에는 빨간 실을 주로 사용하셨다고요. 지금은 정말 다양한 색이 있네요!
손님들에게 판매할 때 우연히 알게 된 빨간 실의 의미(돈, 열정)를 설명했는데, 점차 우정, 사랑과 같은 의미를 더 찾으시더라고요. 저희가 사용하는 색은 온전히 손님과의 기억에서 탄생했어요. 매장에서 손님과 수다를 떨다 보면 깊은 이야기까지 나오곤 하거든요. 손님이 고민을 털어놓고 가시면, 긍정적인 색을 이용해 ‘좋은 일만 생길 거야(갈색)’, ‘자신을 믿어(자주색)’ 같은 의미를 담아 그의 행운을 빌며 팔찌를 엮어요. 그분에게 전하는 편지랄까요. 손님을 향한 편지가 쌓이다 보니, 제품이 다양해진 거죠. 어떤 의미가 담긴 팔찌는 마치 부적처럼 힘이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색의 의미와 에너지 심지어 색채 심리학까지 공부했습니다.
현재도 ‘우리가 선택한 색상이 고객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가’를 가장 신경 쓰고 있어요.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생각을 소재로 명확히 표현하고 있는지 고민하며 제작하고 있죠. 그게 일일이 뵙지 못하는 고객과 소통하기 위한 저희만의 방식입니다.



ccn made에는 정말 다양한 제품이 있는데요. 특히 애정하는 아이템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꼭 하나만 꼽자면 산호, 파이라이트, 하울라이트 원석 3가지가 들어간 ‘돌다리’를 추천해요. 이 팔찌는 외국에서 건너온 저희 직원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더 애착이 가요. 19살에 한국으로 시집와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강한 친구예요. 그의 속내를 듣고 이 돌다리를 만들었어요. ‘무심코 던진 돌이 돌다리가 되는 것처럼, 당신의 노력과 땀이 돌다리가 되어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죠. 그리고 BTS 멤버 ‘뷔’가 착용해서 더 기억에 남아요. 안목 높은 BTS 팬클럽 ‘아미’ 분들이 많이 찾아 주시면서, 저희도 더 좋은 물건으로 보답하자는 마음에 제품 퀄리티가 확 올라갔습니다.
가장 얇은 실을 486번 감아 만든 ‘드래곤’은 커플템으로 인기 있는데요. 한복에 쓰이는 은사와 금사로 만드는 단순하지만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그리고 삐삐 세대라면 눈치챘을 텐데, 486은 사랑과 영원을 뜻하는 암호예요.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며 만들었어요. 물론 사랑뿐 아니라 색깔에 따라 건강, 행운, 기쁨 등으로 의미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색과 재료의 의미
돌다리 : 하늘색(사랑), 산호(용감), 파이라이트(긍정), 하울라이트(외로움과 슬픔을 덜다)
금용 : 흰색(영원과 순수), 골드(건강과 행운)

‘만약에’, ‘왈왈’처럼 독특한 이름의 제품도 눈에 띄는데요, ‘돌다리’, ‘드래곤’처럼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제품에 마음을 심고 있어요. 지금 언급하신 두 제품도 저희 직원들의 인생이 담겨있어요. ccn made의 오랜 관습이죠. 저희 디자인 회의의 주된 내용은 팔찌에 의미를 담고 풀어가는 과정으로 채워져요. 대부분 디자이너의 경험과 마음에서 비롯된 제품을 만들어요.



브랜드 운영 방식에서 놀란 부분이 있는데, 평생 A/S가 가능하다고요.
손으로 만드는 제품이라 웬만하면 수선이 가능해요. 또 실팔찌는 오랜 시간 착용하다 보면 애착이 생기곤 해 끊어지면 같은 실 또는 다른 제품과 연결해 다시 만들어 드리곤 해요. 그렇게 탄생한 게 3MAX 제품인데요, 의미도 3배예요. 예를 들면, 돈(빨강) 다음에 행복(갈색)이 쌓이고, 성공(주황)이 쌓이는 식으로요.

실장님이 그리는 최창남 메이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8년 전 겨울, 부산에서 첫차를 타고 ‘디어하트’라는 기부 팔찌를 사러 온 중학생 손님이 있었어요. 정말 추운 날이었는데, 첫 일정을 기부 팔찌 사는 일로 시작했던 학생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눈물을 꾹 참고 판매했죠. 그때 결심했어요. 저 어린 손님이 준 돈을 가치있게 쓸 수 있는 어른이 되자고. 이렇게 나이를 떠나 스승 같은 고객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살아왔어요. 수많은 각오를 다 실천하진 못했지만,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중 하나가 29년째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나의 동료들을 위해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고객에게 인정받는 제품을 꾸준히 제작하며 88세까지 꿈을 향해 열심히 걸어보겠습니다.
Photograph / G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