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함께 발달한 음식문화는 현재의 미식 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민간에서 내려오는 구전문학 속 음식에는 당시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옛 조상부터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꾸준히 사랑받는 식재료, ‘메밀’에 대해 설화와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 글
- 신강우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역사가에 의해 중요하다고 판단된 사실만을 기록할 뿐이다. 대개는 왕과 재상들이 중요했다. 그들에게 산에서 밭 갈고 바다에서 생선을 잡는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구전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지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읊고 들었던 사람들의 삶과 욕망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담기기 때문이다. 특히 구전문학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그렇다. 어떤 음식이 밥상에 오르는 데는 그 사람의 삶이나 지역의 역사가 녹아 있기 마련이다. 구전문학 속 음식은 역사책이 기록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엿볼 귀중한 단서가 되곤 한다.
설화 속 사람들
배고프고 불안한 삶에는 믿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안전하고 풍족한 미래를 바라는 마음은 다양한 성격의 신을 만들어 냈다. 특히 제주에는 무려 1만 8,000명의 신이 존재하며,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천지왕이 인간 세상을 여는 이야기, 저승사자가 인간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이야기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화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신화가 있는데, 남존여비 사상을 통쾌하게 깨부순 농업신 자청비(自請妃) 이야기다.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난 자청비는 씩씩하고 진취적인 인물이다. 어느 날 그녀는 냇가에 빨래를 하러 갔다가 하늘나라 문선왕의 아들 문도령을 만난다. 그는 글공부를 위해 거무선생에게 가던 길이었다. 문도령에게 호기심을 느낀 자청비는 집에 돌아와 부모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어머니, 거무선생에게 글을 배우러 떠나고자 합니다.”
“여자가 무슨 글공부를 한단 말이냐?”
“그런 말씀 마세요. 자식은 저 하나뿐인데 나중에 두 분이 돌아가시면 제사 때 지방은 누가 쓰겠어요?”
자청비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부모를 설득한 자청비는 남장을 하고 문도령과 함께 길을 떠난다. 글을 배우는 3년간 자청비는 거무선생의 삼천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공부를 마친 문도령이 하늘나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자청비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문도령은 자청비에게 돌아오리라 약속을 남긴 채 하늘로 올라가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자청비는 문도령을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낸다. 자청비의 집에는 게으르고 탐욕스러운 하인 정수남이 있었는데,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문도령을 봤다’며 자청비를 속인다. 어두운 산속에서 정수남이 흑심을 보이자 그녀는 기지를 발휘한다. 호의를 베푸는 척, 자신의 무릎에 누워 쉴 것을 제안하고 정수남의 오른쪽 귀를 담뱃대로 찔러 위험에서 벗어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때부터 자청비의 영웅적인 면모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자청비는 이제 문도령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불타는 칼 다리 위를 건너는 등 갖은 고생 끝에 문도령과 재회하고 마침내 결혼한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도 잠시, 하늘나라의 선비들이 반란을 일으켜 혼란에 빠지고 문도령까지 죽고 만다. 자청비는 모든 난리를 수습하기 위해 다시 한번 여정길에 오른다. 서쪽 하늘의 신비로운 꽃밭에서 멸망꽃과 생명꽃을 꺾어 돌아와 그 꽃으로 반란을 평정하고 문도령도 되살린다.
큰 공을 세운 자청비에게 문선왕은 하늘나라에서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자청비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저는 제주 땅에 내려가서 살겠습니다.
땅에 심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곡식의 씨앗을 내려주십시오.”
문선왕이 나눠준 12종의 곡식 씨앗을 들고 지상으로 내려온 자정비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풍년에 들게 한다. 사람을 살리는 지혜와 힘을 가진 자청비는 농사의 풍흉을 정하는 농경의 신에 오른다. 그녀가 겪은 시련은 한 해 농사에 닥친 재해를 상징하며, 마른 땅에 생명을 주는 공평한 존재로 남은 것이다.
자청비 신화에는 재미있는 반전이 하나 있다. 제주 땅으로 내려온 자청비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가져온 씨앗들에 대해 설명하는데, 문득 자신이 가져오지 않은 씨앗이 하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다시 하늘로 올라가 그 씨앗을 가져온다. 바로 다른 작물보다 늦게 뿌리고 수확한다는 ‘메밀’이다.
배고픈 제주에서의 삶, 그리고 메밀

휴양지로 잘 알려진 제주는 사실 척박한 땅이다.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지형이 대부분이라 빗물이 잘 고이지 않기 때문이다. 벼농사를 짓기 어려워 제주 사람들은 예부터 다양한 먹을거리를 찾아다녔다. 거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을 골라 키우고, 중산간에는 소와 말을 풀어놓고 길렀다. 농사가 여의치 않을 때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먹을 것을 겨우 구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제주는 ‘배고픔의 섬’이었다.

서민들에게 척박한 제주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풍흉이 심한 농사만으로는 살 수 없기에 남자들은 먼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최악의 경우, 풍랑을 만나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니 여자들도 남자에게만 생업을 맡길 수 없었다. 직접 거친 물에 뛰어들어 전복과 미역 등을 잡아 뭍에서 곡물과 바꿔 생계를 꾸려 나갔다.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갔던 자청비 설화는 다름 아닌 제주의 실제 여성들을 모델로 한 셈이다.
요즘의 제주는 상전벽해 수준이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맛집들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어느새 ‘미식의 섬’이 되었다. 제주는 지금도 봄과 가을이 되면 자청비가 선물했다던 메밀꽃으로 섬 곳곳이 새하얗게 뒤덮인다. 사람들은 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다만 메밀꽃만이 그 자리에 서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배고픈 역사를 묵묵히 증언할 뿐이다.
든든한 한끼, 메밀

메밀은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고 생육기간도 짧아서 다른 작물보다 씨앗을 늦게 뿌려도 빠르게 수확할 수 있다. 때문에 농부들은 다른 작물을 먼저 길러 수확한 뒤 메밀 씨앗을 뿌리곤 한다. 특히 밀이나 쌀을 재배하기 어려운 산간 지역에서 메밀을 주로 재배한다. 어쩌면 ‘메밀’이라는 이름도 산과 관련 있을지 모른다. 산(山)을 가리키는 옛말은 ‘메’, 또는 ‘뫼’. 그렇다면 메밀 또는 뫼밀은 ‘산에서 나는 밀’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메밀의 어원에 대한 가설 중 하나다.
제주의 땅에서 메밀은 잘 자랐다. 메밀은 삶을 지탱하는 귀한 곡물이었고,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메밀을 이용해 다양한 음식을 개발하고 먹어왔다. 대표적인 음식이 메밀범벅이다. 물에 큼직하게 썬 고구마나 무를 넣어 익힌 뒤, 메밀가루를 넣고 반고형이 될 때까지 조리한 음식이다. 쉽게 만들 수 있어 제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었고, 손에 들고 먹기 편해서 헝겊에 싸 허리 전대에 넣으면 든든한 도시락이 되어주었다.

메밀범벅이 제주 사람들의 일상식이라면, 결혼식이나 명절같이 행사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빙떡’이 등장한다. 메밀 반죽을 돼지기름에 한 장씩 조심스럽게 지진 뒤 무채를 넣고 김밥처럼 돌돌 말아먹는다. 소박한 자태와 삼삼한 맛 때문에 빙떡이 행사 음식이라는 데 작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빙떡은 만드는 데 제법 손이 많이 가서 평소에는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강원도식 ‘메밀전병’이라는 이름으로 향토 음식 전문점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잠실에서 즐기는 메밀
메밀꽃이 새하얗게 피는 10월이다. 조상들의 배고픔을 달래 준 메밀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별미이자 트렌디하게 즐기는 음식으로 남았다. 거칠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매력을 가진 잠실 인근의 메밀 맛집 세 곳을 소개한다.

INFO
유천냉면 풍납본점
운영
화-일 10:30~21:00, 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 송파구 강동대로3길 22
메뉴
들기름 메밀면 11,000원
문의
02-419-4000

INFO
남경막국수
운영
화-일 11:00~22:00, 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7길 52-29
메뉴
들깨막국수 10,000원
문의
02-417-0060

INFO
봉평메밀막국수
운영
매일 10:30~20:40
주소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61 트리지움상가 B1
메뉴
물막국수 9,000원
문의
02-555-9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