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빈 작가
상대적으로 ‘비주류’라 볼 수 있는 불교 미술과 문화재 복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불교 미술이 지금은 비주류로 분류될 수 있지만, 어느 문화권이든 종교와 예술은 함께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과거에는 불교 미술이 주류였던 셈이죠. 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당대 주류 예술이었던 불교 미술과 전통 미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불교는 아시아 전반에 퍼져 있잖아요. 주변 나라와 비교되는 한국 탱화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한국 탱화의 특징을 꼽으면 가장 먼저 고려 시대 작품을 들 수 있어요. 고려 탱화는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웅장한 구도와 단아하고 우아한 자태, 자유로운 필선, 아름다운 금 문양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거든요. 구조적으로는 본존(本尊, 법당에 모신 부처 가운데 가장 으뜸인 부처)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사다리꼴로 배치하거나, 협시(夾侍,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두 보살)의 둥근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머리에서 발하는 빛)이 본존을 떠받치게 자리 잡고 있어요. 이런 양식은 동시대 중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모습이라 한국 탱화의 독자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탱화는 작업 방식도 다른 동양화와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세월에 의해 손상된 흔적까지 복원하는 ‘현상 모사’나 원화가 완성된 당시의 모습을 연구해 복원하는 ‘복원 모사’를 할 경우 전통 방식 그대로 진행해요. 그리는 일 외에도 사전에 준비해야 할 과정이 정말 많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분들이 누에고치로 비단을 만들면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연결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교반수 처리(비단, 종이 등에 물감이 잘 묻도록 하는 작업)를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상황에 따라 염색까지 마치면 비로소 먹선을 올릴 수 있어요.

한 작업, 한 작업에 정성이 가득 들어가네요. 그럼 지금까지 작업하셨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작년에 참여한 보물 제1345호 만연사(萬淵寺) 괘불탱화가 기억에 남아요. 일 년이 넘도록 가로 8m, 세로 6m가 넘는 탱화 앞에 엎드려 8시간 정도 그림을 그리는데 이 과정이 마치 수행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탱화는 단순히 시각적, 종교적 예술을 넘어 자신을 마주하고 명상하며 마음을 비우고 또다시 채우는 의식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고된 작업임에도 작가님을 끌어당기는 탱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을 좋아해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인데, 한국의 미(美)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아요. 탱화를 그리다 보면 이런 태도가 제 삶에 반영되고,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작업 자체는 고된 편이지만, 탱화가 주는 이런 힘이 있기에 끝까지 그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불교문화에 기반한 <불가살>, <사바하> 등의 콘텐츠가 인기인데요. <불가살> 미술 작업에 직접 참여하셔서 그런 변화를 더욱 느끼셨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된다는 점이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한국의 매력을 많은 분들께 소개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해외에서 한국 문화를 주목하면서 우리도 우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고, 제대로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고 보거든요. 박물관이나 전통 미술관에 가면 예전보다 사람이 많더라고요. 탱화를 배우려고 하는 20, 30대분들도 늘어서 재료인 석채(石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같아요.

고전 시대물이 아니어도 한국 콘텐츠에 탱화가 등장하면 그 존재감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데요. 앞으로 전통 미술이 어떤 식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을까요?
탱화를 자세히 뜯어보면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부분이 숨어 있어요. 귀엽기도 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부분도 많고요. 또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에선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생각나기도 해요. 탱화 안에 녹아 있는 아이디어 요소가 많기 때문에 여러 매체나 예술가분들이 이를 새롭게 표현하고 해석한다면 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새로운 한국 문화가 등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탱화를 비롯한 전통 미술을 쉽게 접해야 할 텐데요. 어디서 탱화를 감상할 수 있을까요? 또한 탱화를 감상할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야 할지 팁을 전수해주세요.

우선 근처 사찰에 한 번 방문해 보세요. 그리고 탱화에만 집중해 그림 양식이나 그려진 연도를 보기보단, 사찰과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느끼는 것을 추천합니다. 자연 속에서 목탁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절에서 피우는 향 내음과, 꽃과 풀의 생명력을 느끼며 절 안 곳곳의 불교 미술을 감상하신다면 분명 색다른 경험이 되실 겁니다.

문화재수리기능인이자 탱화 작가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를 포함해 국가무형문화재 118호 불화장 전승 교육사이신 이채원 스승님께 교육받은 제자들이 ‘청린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분들과 함께 탱화 모사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년쯤 인사동에서 열 것 같아요. 개인적인 목표로는 제가 좋아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과거에서 현재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표현하는 작가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INFO

김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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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  G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