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프레거는 LA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다. 그는 사진과 촬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전에 깊은 감명을 받은 뒤 카메라 한 대를 사들고 시각 예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에 관한 이 짧은 소개글은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뜨거운 열정과 잊고 살았던 꿈을 다시금 꿈틀거리게 한다. 지난 2월 롯데뮤지엄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연 알렉스 프레거를 비대면 인터뷰로 만나 열정 가득한 그의 작품 세계를 물었다.
- 글
- GEEP

한국 최초로 대규모 개인전 ‘BIG WEST’를 연 소감이 어떤가.
새로운 관람객들 앞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관람객들은 내 작업에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존재다. 그들을 통해 예술이 얼마나 보편적일 수 있는지 생각하고, 예술이라는 언어적 매개로 우리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한국 관람객들이 내 작품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이번 전시는 당신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사진과 영상 100여 점을 소개한다고 들었다. 많은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가장 최근작인 <Part One: The Mountain>을 소개하고 싶다. 이전과 달리 군중을 피사체로 한 초상화 작품이다. 카우보이, 승무원, 회사원 차림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하늘에 떠있는 모습을 담았다. 이 작품은 다가올 미래를 생각했을 때 느낀 극단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표현이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난 격변으로 인해 현대 사회에 만연한 불안함 같은 감정 말이다.
‘초상화’로의 회귀는 당신의 초기작을 떠오르게 한다. 다시 초상화 작업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커리어 초기에 탐구했던 초상화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다시 초상화로 돌아가는 것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기에 알맞은 때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폭발적인, 심지어 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내적 혼란을 포착한 날것 그대로의 미국 초상화를 제작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단절된 현대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 보고 느낀 무언가를 다시 공유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지금의 우리는 안온했던 현실로부터 강제 추방되어 두려운 미래로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 시기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서로를 향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라 생각한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작업했던 <Face in the Crowd> 시리즈를 보면 많은 인물이 작품에 등장한다. 대규모 군중을 사진에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사람들을 정말 좋아한다. 사람은 나에게 끝없이 흥미로운 대상이다. 사람을 피사체로 삼으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내가 가진 도전의식과 질문을 표현할 수 있다. 사람을 피사체로 담는 프로젝트를 통해 안정감을 찾는다.
어떤 작품은 350명의 배우가 등장할 때도 있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만큼 디렉팅하기도 쉽지 않을 듯한데, 모든 캐릭터에 스토리를 제시하고 포즈나 표정도 직접 디렉팅하는지 궁금하다.
모두에게 원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많은 인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촬영이라도 그들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엇이고,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길 바라는지 알려주며 그때그때 구체적인 디렉팅을 주는 방법으로 촬영을 진행한다. 대규모 그룹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촬영 시 프레임 속의 모두를 매번 동시에 지켜볼 순 없으니 편집 과정에서 이런 특별한 순간들을 보석처럼 발견한다. 결과적으로도 이러한 발견이 최종 작업물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프레임 속 모든 요소들에 생생한 현장감이 묻어난다. 디테일한 디렉팅을 위해 어떤 점을 중요시하는가.
나에게는 모든 디테일이 중요하다. 주근깨, 패턴, 가발, 태닝 자국 등을 세세하게 살핀다. 이렇게 세밀하게 관심을 갖고 각 캐릭터가 존재하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캐릭터들은 생명을 얻고 살아난다. ‘컬러’도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기에 주요 요소로 활용한다.
미디어에서는 당신을 ‘할리우드 색감과 감성을 담아내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지난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다는 뜻인데, 당신의 지난 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유년기는 어땠나.
유년 시절을 보낸 LA는 아직 와일드 웨스트 감성이 남아있는 검은 캔버스 같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다. 한편, 내 작품에 대한 평으로 자주 듣곤 하는 ‘향수’는 흥미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탐구하는 것은 괴상하고 불안한 면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점에 끌리고 또 한편으론 즐긴다. 과거의 감정을 주제로 다룰 땐 어두운 면을 건드린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서로 다른 시기의 요소를 혼합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이 아니라면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도록 그 점에 중점을 두며 공간을 구성한다.
당신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다양한 상상과 해석을 가능케 한다. 작품 속에 숨겨둔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 한 작품을 예로 설명해 달라.
앞서 언급한 <The Mountain>을 예로 들면, 이 작품에는 다양한 상징을 녹여냈다. 문학, 종교, 심리학적 상징들을 통해 개인이 깨달음을 얻거나 심판받을 수 있는 공간을 프레임 속에 만들었다. 작품명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 나는 종종 산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선 먼저 일종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이란 어쩌면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을 목격하는 존재다. 그게 나의 접근법이었고, 작품 속 사람들이 고대 환경에서 형언할 수 없이 큰 장애물과 맞닥뜨리는 과정에 있다고 상상하며 작업했다.
무엇보다 나는 작품을 만들 때 ‘첫 감정의 마법 같은 순간’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첫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있는 순간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첫 감정은 우리에 대한 단서, 우리가 서로 관계를 맺는 방법이 드러나는 순간이기에 정말 강렬하다. <The Mountain>을 보며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작고 사소한 처음의 감정을 상기하길 바랐다.
당신은 사진과 영상에 대한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2001년 게티 뮤지엄에서 ‘윌리엄 이글스턴’의 전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포토그래퍼가 되었다고 들었다. 당신을 포토그래퍼의 삶으로 이끌었던 당시 그 느낌을 떠올려 본다면?
그 당시 나는 그다지 발전성 없는 지루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문득, 내가 내 인생을 바꾸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어왔기에 삶의 목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을 만한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어느 날 윌리엄 이글스턴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 갔다. 그전에는 사진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의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사진들은 겉으론 평범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신비한 마법과도 같은 감정을 느끼며 극도의 흥분 상태였던 내가 생각난다. 그날 이후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싶어졌고, 언젠가 내가 느낀 지금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했다. 그렇게 며칠 뒤 중고 카메라 한 대를 장만했고, 또 며칠 뒤 암실 장비를 사서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방법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사진에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사진을 시작한 계기도 한편의 영화 같다. 한편, 2012년엔 영화 제작으로 에미상까지 받았는데, 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도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우연이지만, 할리우드에서 고작 몇 분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영화 제작에 대한 생각을 처음 품게 된 것은 런던에서 있었던 오프닝 행사였다. 사람들이 내게 사진 촬영 전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질문했는데, 그 과정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루페(볼록렌즈를 사용한 확대경)를 확대하듯이 내가 보여주고 있던 사진 프레임의 저편으로 시야를 옮겨 확장했다. 항상 영화와 스토리텔링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온 사람이기에 이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
사진은 내가 깊이 예찬하는 매체다. 사진은 우리 너머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아주 디테일하게 포착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통해 내가 느꼈던 감정에 닿을 수 있길 바란다.
About 알렉스 프레거
알렉스 프레거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 개인전시를 계기로 예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군중의 모습을 포착하는 <Face in the Crowd>와 같은 작품과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촬영한 <La Grande Sortie> 시리즈 외에도 영화, 패션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프레거의 작품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 뮤지엄[CYU1] 등 세계 각지 유명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2012년 브래드 피트, 게리 올드먼 등이 출연한 13부작 영화 <Touch of Evil>(2011)로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Photograph / Alex Prager , LMOA